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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 길면 70세이고 더 건강하면 80세이다. 100세 시대라 운운하지만 건강하게 100세 살기엔 무리다. 떠난다는 것이다. 한번 태어났으니 또한 이생을 떠나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떠날 땐 가져 갈 것도 없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노년에도 물질이나 소유에 집착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 갈 날이 짧게 남은 인생인데 무엇에 더 집착하랴? 그러고 보니 인생은 덧없고 허무하다. 인생을 닮은 자연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끊임없이 순환하지만 인생은 순환이 없다. 겨울이라는 노년에서 끝이다. 그래서 요즘은 인생의 마지막 여정이 요양원에서 막을 내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노년이라고 그저 막장 인생을 산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라는 법도 없다.

 청춘은 때론 절망과 실수를 반복하며 미래를 향해 전진하지만 노년은 적어도 절망과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는 않는다. 청춘은 열정과 그 열정에 대한 사랑을 집착으로 증폭 시켜 가지만 노년의 사랑은 과거를 회상하며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추억한다. 추억한다는 것은 돈이 들지 않는다. 각자에게 주어진 향기로운 자유 의지다.

 청춘의 열정이 뜨겁다면 노년의 열정은 지혜롭다. 다 이루지 못한 청춘의 사랑이 물거품 같다면 노년에 회상해 보는 첫 사랑의 기억들은 애잔한 연민을 자아낸다. 지난주 막을 내린 공연 제작소 '마당'의 연극 '언덕을 넘어서 가자'는 초등학교 동기 동창들이 50여년의 세월을 훌쩍 지나 재회해 우리에게 곧 일어날 노년의 에피소드들을 연극으로 구성해 보여주고 있다. 이 연극은 청춘 때 이루지 못한 첫 사랑의 기억들을 노년에 이르러 유쾌하고도 인간애 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70나이가 넘도록 성실하고도 고집스레 인생을 살아온 완애(극중 황병윤)는 살아온 내력만큼이나 우직하고 구두쇠 일만큼 돈 씀에 알뜰하다.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는 완애와는 달리 그에게 빌붙어 살다시피 하는 자룡(극중 조용한)은 초등학교 동기동창 사이다. 자룡은 돈만 생기면 성인 오락실로 달려가는 철부지다. 이들 사이에 어느 날 초등학교때부터 선망의 대상 이였던 다혜(극중 허은녕)의 우연한 출현으로 과거에 삼각 관계였던 이들의 첫사랑 애정 전선에 빨간불이 켜진다. 이후 이 연극은 마치 과거로 추억의 여행이 시작된 듯이 극적 긴장감과 스토리 텔링에 탄력을 받으며 극진행이 유연하면서도 활기차게 진행된다. 이에 양념 역할을 하는 멀티역의 배우들인 김새봄, 조장길, 김규리의 웃음을 자아내는 감칠맛 나는 변신의 연기들은 배우로서의 성격을 다양하게 구축해서 관객들에게 또 다른 흥미와 유쾌한 관람을 선사했다. 구두쇠라고 여겼던 완애는 자식으로인해 어려움에 처한 다혜를 위해 몇천만원의 돈을 선뜻 베풀며 물질보다 더 깊은 우정을 나눈다.

 허은녕 연출자는 이번 작품에서 고령화 시대라고는 하지만 노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막연히 고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지금의 우리 세대들에게 노년 역시 핑크빛 옛사랑의 추억을 소중하고 알싸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되새겨 주고자 했다. 그리고 한 번 태어났으니 한 번 죽는 것은 불변의 이치인데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여전히 용서하지 않으려하고 사랑하지도 않으려는 우리에게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의 결말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노년이 되어도 자식에 대한 부모로서의 사랑은 뼈가 으스러 진다해도 아낌없이 주고 떠나고 싶어 하는 자식에 대한 뜨끈한 사랑을 감동으로 전하고자 했다.

 이 연극은 우리 모두에게 곧 다가올 미래이자 현실의 모습이다. 언덕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인생의 언덕은 넘어 가기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긴 등산과도 같다. 언덕이 오면 또 넘어가고 또 넘어 가야 한다. 꼭 기억해야할 것은 언덕은 넘어서 가기위해 우리 앞에 놓인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준 연극 '언덕을 넘어서 가자'에 응원을 보낸다.

 늙어 간다는 것은 화려하지도 않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초라한 것만도 아닌 것이다. 노인의 백발은 깊고 깊은 지혜의 면류관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노년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난 인생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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