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 만나볼 소설은 한국의 여류작가 박화성(1904~1988)의 장편소설 『창공에 그리다』(1965)이다. 내가 이 소설을 떠올리게 된 것은 한 편의 시(詩) 때문이었다. 시성 하이네의 <선언>이라는 시로 지금까지도 전문을 다 외울 정도로 좋아하는 시다. 내가 이 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이 바로 『창공에 그리다』라는 소설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왜냐하면 이 시가 소설 『창공에 그리다』 내용 속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백남혁이 여주인공 장애영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담아 낭송한 시가 바로 <선언>이다.

 오늘은 이 시를 이 지면을 할애해서 전문을 싣고자 한다.

 선언/어둠의 장막이 내려오면 바다는 더욱 광포해지다/나 바닷가에 홀로 앉아서/춤추는 하얀 파도를/바라보고 있노라/그리고 내 가슴/바다와 같이 부풀어 올라/깊은 향수가 내 마음을 사로잡도다/정다운 모습아/그대 위한 이 향수/그대는 어느 곳에서도/나를 사로잡고/어느 곳에서도 나를 부르도다/그 어느 곳에서도/그 어느 곳에서도……/바람 부는 소리에도/ 파도 치는 소리에도/나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는 한 숨 속에서도……/가느다란 갈대를 꺾어/나는 모래 위에 쓰다/아그네스,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고/그러나 심술궂은/물결이 밀려와/이 즐거운 마음의 고백을/그만 힘도 안들이고 지워버렸노라/연약한 갈대여/힘없이 허물어지는 모래여/흘러가 부서져 버리는 파도여!/나는 이미/그대들을 믿으려 하지 않노라/하늘은 어두워지다/내 마음은 황막해지다. 나 억센 손으로/저 노르웨이 삼림에서/제일 높은 전나무를 뿌리째 뽑아/그것을 에트나의 불타오르는 저 새빨간 분화구에 넣었다가/그 불이 붙은/거대한 붓으로/나 어두운 저 하늘을/바탕 삼아 쓰겠노라/아그네스,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고/그렇게 한다며/밤이면 밤마다 저 하늘에/영원한 화염에/그 글자는 타고 있으리/그리고 뒤이어 쉴 새 없이/출생하는 후예들은/환호를 올리면서/이 하늘의 문자를 읽으리라/아그네스,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고.
 
 이 시를 처음 읽고 난 후에 나는 이 시를 수 십 번도 더 낭송했을 것이다. 노래를 잘못 부르는 나는 무슨 행사 때마다 노래 대신에 이 시를 외워서 낭송하곤 했다. 맘껏 감정 잡아 시 낭송을 하면 듣고 있던 친구들이 배꼽을 잡고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래서 오랜만에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박화성작가의 『창공에 그리다』를 읽어보았다. 이 소설은 한국문학전집 박화성 편에 실려 있으며, 고등학교 시절 집 책장에 한국문학전집이 있어서 읽게 되었다. 지금은 친정집에 가보아도 한국문학전집은 사라지고 없는데, 아마도 이사하면서 부모님이 자녀들이 다 성장하고 해서 짐만 된다고 생각하셨는지 어딘가로 처분한 듯하다.

 마침 대학 도서관에 이 책이 있어서 요 일주일 동안 다시 읽으면서 작가 박화성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였다.

 소설 내용은 여주인공 장애영이 일본미술학교 유학 중에 김민수라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지만, 끝내 마약중독자로까지 타락한 남편과 이혼을 하고, 이 결혼에 대한 실망과 허망함을 그림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려고 한다. 이때 연하이면서 미혼인 백남혁은 장애영을 흠모하면서 결혼까지도 생각을 한다. 한편 남편 김민수의 협박에 시달리는 장애영은 민수의 칼에 희생이 되려는 순간에 백남혁이 나타나고, 결국 남편이 죽게 된다.

 법정에서까지 장애영을 감싸주는 백남혁의 사랑으로 장애영은 자신의 그림인 '창공에 그리다'를 완성하는 데에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얼핏 보면 삼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듯 한 연애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여성이 결혼에 의해 삶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주체적인 삶을 구축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자 한 것 같다. 여성의 순결의식에 대한 문제 제기를 비롯하여 여성의 적극적인 삶의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랜만에 낭송해본 <선언>으로 인해 내 치열했던 젊은 시절이 떠올라 한껏 회상에 취해본 하루였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