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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덕대 교수

오늘 만나볼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 밀란 쿤데라(1929~ )의 장편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에 등장하는 토마스와 테레사다. 내 기억 깊은 곳에 남아 있던 이 소설을 생각해 낸 것은 얼마 전 체코 프라하에 다녀왔다는 지인 이야기를 듣고 자연스럽게 영화 '프라하의 봄'이 떠올랐고, 뒤이어 이 소설이 생각난 것이다.

 이 소설이 한국에 소개 된 것은 아마도 1980년대 후반으로 기억된다. 이 작품이 1984년 프랑스에서 발표되면서 작가 밀란 쿤데라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고, 1988년 미국에서 '프라하의 봄'이란 제목으로 만들어져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우리나라에도 그 당시에 들어온 영화 '프라하의 봄'이 인기를 얻으면서 소설이 소개됐다. 나 역시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다.

 정말 오랜만에 이 소설을 다시 읽어 봤다. 느낌이 너무 새로웠다. 처음 읽는 듯한 문장, 내용전개 등에 매료돼 일주일 동안 푹 빠져서 읽었다. 아마 어쩌면 영화를 먼저 본 영향이 컸는지 줄거리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소설은 구성 자체가 독특한 형식이어서 매일 조금씩 읽어도 늘 새로운 느낌인 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사랑에 자유분방한 외과의사 토마스, 운명적 만남으로 토마스와 결혼한 뒤 운명적인 사랑을 믿고 싶어 하는 테레사,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토마스의 애인 화가 사비나, 부인 이외의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으면서 삶을 찾으려고 캄보디아 대장정을 떠난 대학 교수 프란츠 등 등장인물 4명의 삶이 주 내용이다. 비교적 길지 않은 짧은 문장의 나열 속에서 담겨져 있는 의미와 표현이 새삼 놀라웠다. 내가 그동안 다시 읽어 본 소설 중에서 가장 감명받은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8년 체코는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자유주의가 실현되는 기간이 있었다. 일명 '프라하의 봄'이다. 그러나 7개월 만에 다른 동유럽 국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소련은 체코를 불법 침입,공산화로 만들어 탄압한다.

 이런 배경 속에 장래가 촉망되는 외과의사 토마스는 자식을 한 명 낳은 아내와 이혼을 하고 자유롭게 많은 여성과 성관계를 맺으면서 지낸다. 어느 날 토마스는 일 때문에 찾아간 체코의 한 시골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테레사를 만난다. 이후 몇 번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테레사는 운명적인 사랑이라 생각하고 이들은 결혼을 하고 프라하에서 살게 된다. 그러나 토마스는 테레사와의 결혼 전이나 결혼 후에도 큰 차이 없이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 등의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 이러한 토마스의 행동을 이해 못하는 테레사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질투로 망가져만 간다.

 그러던 와중에 체코가 소련의 침공으로 공산주의에 들어가고, 이들은 중립국인 스위스로 망명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토마스는 다른 여성들과 성적인 관계를 맺으며 지내 테레사는 화가 나서 혼자서 프라하로 돌아온다. 뒤이어 쫓아온 토마스와 프라하에서 다시 새 삶을 꿈꾸지만 토마스가 공산주의를 비판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외과의사에서 유리창 청소부로 전락하고 만다.

 그 후 토마스는 테레사와 함께 프라하를 떠나 시골에서 살기로 결정하고 농장 트럭운전수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인근 마을 호텔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트럭이 계곡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로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함께 죽음을 맞는다.

 이 참담한 결과에 한동안 멍해졌다. 어쩌면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두 주인공을 동시에 죽음으로 몰아넣는지 아직도 생각에 빠져있다. 무엇이 가벼운 존재고, 무엇이 무거운 존재냐고 논하는 그 자체가 무의미해 질 정도로 충격적인 결말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 이번 주에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면서 읽고 또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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