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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덕대 교수

오늘 만나볼 소설 속 주인공은 일본현대문학의 기수로 불리는 아베 고보(安部公房,1924~1993)의 단편소설 '침입자(闖入者)'(1951)의 주인공이다.

 소설 제목은 엄밀히 말해서 '틈입자(闖入者)'인데 우리나라 말에는 '틈입자'보다 '침입자'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제목 번역을 '침입자'라고 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번역 소개되지 않았지만, 연극으로는 상영된 적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1999년은 일본문화가 공식적으로 개방된 해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문화의 공식 개방을 둘러싸고 우려했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15년 이상 지난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기우였음이 틀림이 없다. 그해 9월 <한중일 동양 3국 연극 재조명 시리즈③ 일본편>으로 국립극단에서 아베 고보의 작품 '친구들(友達)'을 공연했다.

 '친구들(友達)'은 일본에서 1967년 처음 공연한 작품으로 우의성이 짙은 블랙코미디 또는 부조리극으로 불리며, 전후 일본의 희극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는다. 이 희곡의 모태가 되는 작품이 바로 '침입자'이다.

 1999년 당시에는 작가 아베 고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내가 국내 1호여서 그랬는지, 어느 날 극단 쪽에서 연락이 왔었다. 아베 고보의 작품세계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고, 그때 발행한 연극 팜플렛에는 내 글이 실려 있다. 그리고 당연히 초대돼 연극 '친구들'을 보러갔었다. 연극을 보러 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8년 전의 일이 되고 말았다.

 그후 2012년 재부산일본국총영사관 주최로 실시한 <일본어연극제>에 이 '친구들'을 각색해서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 참가 학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했는지,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기쁨은 이루다 말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우리 학과 연극 동아리는 그토록 원했던 최우수상이라는 정점을 찍게 되었다. 이래저래 해서 '침입자(闖入者)'는 내겐 좋은 인연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그럼 '친구들'의 모태소설인 '침입자(闖入者)'의 줄거리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어느 날 한밤중에 K라는 주인공(남자)이 혼자 사는 아파트에 신사와 그의 부인, 할머니, 그리고 20세 전후의 장녀, 장남에서부터 아기를 안은 소녀에 이르기까지 모두 합해서 9명이나 되는 일가족이 들이닥친다. 그들은 반쯤 열린 문을 열어제치고 "실례합니다"하면서 우르르 집안으로 들어왔다.

 K는 당황해서 왜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느냐고 대항하자 가족들은 집으로 되돌아온 것뿐이라고 한다. K가 여기는 내 집으로 나가 달라고 하자, 침입가족들은 이 집이 누구의 집인지 민주주의의 원리인 '다수결'로 정하자고 하여, 결국 1:9로 침입자들의 집임을 증명하고 만다. 이뿐만이 아니라 K의 노동력, K의 월급, 재산 등 모든 것을 정할 때마다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워 K의 모든 것을 빼앗고 만다.

 K는 온갖 대항을 해보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그의 호소는 아파트 주민은 물론 도시민들에게도 전달되지 않는다. 오히려 침입가족들은 어느새 아파트 사람들과 우호 관계를 맺고 지낸다. K를 둘러싼 침입가족들은 K가 자기주장을 펴면 펼수록 한층 더 단결하여 그를 숨 막히게 한다. 그러다 결국 K는 창고에 갇히게 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살을 하고 만다.

 지금 이 내용을 읽는 독자들은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K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나 그의 노력은 외부 세계에 미치지 않는다. K는 분명 집을 비롯하여 자신의 소유물이 자기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증명하지 못해 빼앗기고 만다.

 한 개인이 이상한 집단에 의해 파멸돼 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인이 아니어도 좋다. 예를 들어 일제 식민지 지배만 보더라도 친선과 우호를 내새워 우리 땅을 점령하고 통째로 지배를 했고, 그에 대해 우리는 저항을 했고, 우리의 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것을 주장하지 못하고 만 상황과 어딘가 흡사하지 않을까. 다수의 연대에 의해 개인의 삶이 결정되어 버리고 마는 현상을 통렬히 풍자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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