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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논설위원

대지를 태울듯한 불볕더위의 여름 극장가에서 두 영화가 관심을 끌고 있다. 바로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은 평론가와 언론이 '철 지난 반공영화'라고 혹평했음에도 관객들이 쇄도했다. 덕혜옹주도 스토리의 흡인력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에 힘입어 호응이 뜨겁다.

 재미있는 것은 정치권의 반응이다. 여권 지도부는 인천상륙작전, 야권은 덕혜옹주를 감상했다고 한다. 각자 코드에 맞는 영화를 보고 정치적 메시지를 전했다. 여당 원내대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속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의 유지와 만반의 대비 태세가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했다. 야당 원내대표는 위정자들이 제대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해 식민지배의 나락에 떨어지면 결국 고통은 국민이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야 지도부가 바쁜 시간을 쪼개 영화를 감상하고 교훈을 얻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 정치는 너무 삭막하다. 상소리와 파열음이 난무하는 정치는 품격 잃은 이전투구일 뿐이다. 국회의원들이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많이 둔다면 거칠기 짝이없는 정치 언어도 한결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인천상륙작전은 적의 침략을 받아 기울어진 전세를 뒤집기 위해 유엔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주도한 작전에서 산화한 이름없는 영웅들의 이야기이다. 덕혜옹주는 몰락한 조선 왕조의 딸로 태어나 어린나이에 강제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제의 내선일체(조선의 일본화) 정책에 따라 지방 백작과 정략결혼 했으나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켜 불행하게 삶을 마감했다.

 두 영화의 내용은 다르지만 맥락은 같다. 나라를 잘못 타고난 젊은이들의 비극적 서사라는 점이다. 덕혜옹주는 황녀라고 하지만 일제 강점기인 1912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대한제국의 황제에서 나라를 강탈당하면서 전직 왕으로 전락한 고종의 딸일 뿐이다. 권력을 거세당한 채 뒷방으로 물러난 왕의 금지옥엽이었기에 이미 태어나는 순간 굴곡진 일생이 준비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덕혜옹주 불행의 연장선에 인천상륙작전이 있다. 외세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은 일본 군국주의의 패망으로 1945년 8월 15일 벼락처럼 떨어진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곧바로 주변 강대국의 개입으로 팔다리가 찢기듯 좌우 두 나라로 갈려야 했다. 급기야 북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이 빚어졌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야 했다. 영화는 그 작전에 투입된 한국 해군 첩보부대원들의 헌신적 활약과 장렬한 최후를 그렸다.

 두 영화는 모두 8월 15일을 겨냥한 애국 마케팅이다. 덕혜옹주에서 덕혜는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지만 창덕궁 낙선재에서 남긴 사실상의 유서가 "대한민국 우리나라"였다. 인천상륙작전에서 첩보부대 책임자였던 장학수 대위는 숨을 거두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조국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국권을 상실한 나라는 덕혜옹주를 지켜주지 못했다. 힘이 없는 나라는 젊은이들을 강자의 노예나 전쟁의 제물로 바쳐야 한다. 나라를 잃어버린 황녀나 징용으로 끌려간 백성, 이념이 다른 적의 손에서 국토를 지키겠다고 목숨을 내놓은 젊은이들은 시대의 희생자들이다.

 나라의 안위가 경각에 달렸을 때 국가는 젊은이들에게 피를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위기가 오지 않도록 국가 경제나 안보를 단단하게 다져놔야하는 건 국가의 책임이다.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나이에 어울리는 삶과 꿈을주지 못하고 목숨을 요구해야 한다면 그 건 이미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우리의 현실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도, 경제도, 안보도 겉돌고 있는 느낌이다. 여야 정치인들은 4·13 총선 이후 협치를 공언했지만, 헛소리가 됐다. 경제는 추진력이 고갈돼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둘러싼 격심한 국론 분열에서 보듯 안보에서는 제 앞가림도 못하고 있다.

 우리의 힘이 국권을 잃은 1910년이나 6·25가 발발한 1950년에 비해 경이적으로 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이나 내부 분열은 우리의 자생력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여야 대표는 두 영화에서 각각 굳건한 안보와 국가 리더십의 절실함을 읽었다.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부실하면 나라가 바로 서기 어렵다. 부국강병은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추진이 가능하다. 강한 지도력은 국민적 지지에서 나온다. 헌신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몸을 사리면 국가는 쇠락한다.

 북한은 미사일을 펑펑 쏘아 올리고, 중국은 사드 보복을 해대겠다고 기관지들을 총동원해 연일 협박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이고 있다. 공격용도 아닌 방어용 무기 체계 하나에 이렇게 나라가 흔들려서야 진짜 안보 위기가 닥쳤을 때는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우리의 오늘이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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