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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수사를 유지하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같은 야당인 국민의당이 연일 날을 세우고 있다. 김성식 정책위 의장은 "전략적 모호성은 제1야당의 피난처가 될 수 없다"고 비판했고 박지원 대표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안보를 이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안보를 집권 전략으로 이용하는 것도 큰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김성식과 박지원의 이같은 작심발언은 김종인 대표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못을 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사드 문제로 중국을 다녀온 6인의 독수리를 향해  "당신네들의 지적 만족을 위해 정당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며 쓴소리를 했다. 더민주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작심한듯 발언한 김 대표의 문장은 복선을 깐 발언이었다. 김 대표의 발언은 당내 6인의 독수리는 물론 친문그룹으로 대표되는 강경파를 겨냥했다. 사드 체계에 대한 '무당론 원칙'에 반대해 온 당 안팎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김 대표의 의중은 결국 집권이며 스스로 킹 메이커가 될 것을 다짐하는 주문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사드 배치에 대해 당론을 정하지 않은 것은 차기 집권을 위한 포석이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는 "안보를 담당하는 사람들 의견은 일단 존중하는 게 좋다고 본다"며 당 일각의 '사드 불가론'과 명확하게 선을 그은 바 있다. 정작 대선 후보 1순위라는 문재인 전 대표는 "사드 배치 결정의 재검토와 공론화를 요청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당권에 뛰어든 주자들도 반대 기류가 강한 것과 대조적이다. 실질적인 당론은 반대지만 간판은 무당론으로 걸어 모호한 스탠스를 취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이다.

 안국선의 신소설 '금수회의록'의 원전격인 '박쥐구실설화'가 있다. 풍자가 주류를 이룬 조선말 베스트셀러 소설이었던 이 설화는 자기 편리한 대로 입장을 바꾸며 요리조리 책임을 피하는 인물을 풍자한 내용이다. 사자성어로 '편복지역'이다.

 새들끼리 봉황을 축하하는 잔치에 박쥐만 빠졌다. 봉황이 박쥐를 불러놓고 "네가 내 밑에 있으면서 어찌 거만할 수가 있느냐?"고 꾸짖었더니, 박쥐가 "나는 네발 가진 짐승인데 너같은 새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고 정색을 했다. 시간이 흘러 기린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져 네발 짐승들이 다 모였을 때 박쥐만이 오지 않았다. 기린이 박쥐를 불러 또 꾸짖었다. 그러자 박쥐는 "나는 이렇게 날개가 있는데 네발 짐승들의 잔치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냐?"며 날개를 펼쳐 보였다. 이솝이나 동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박쥐 이야기의 고전이다.

 사드를 집권 전략의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발상이 놀랍다. 안보를 팔아 정권 유지에 이용한다는 비난은 말장난이다. 툭하면 노동미사일을 쏘고 망원경 쳐들고 입 벌리는 김정은은 선전이 아니라 현실이다. 사드 배치를 두고 동북아 균형축 붕괴 운운하는 중국의 엄살과 연일 한국의 남남 갈등에 전술적 모험을 걸고 있는 중국 공산당은 매일 상대해야 하는 우리의 무역 파트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를 판다는 주장은 북쪽의 대남방송 스피커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다. 그 소음이 우리 정치에서 버젓이 공식 코멘트로 들린다.

 성주 군민들은 이해할 수 있다. 성주 근처 칠곡이 고향인 어느 지인이 성주로 사드 배치지역이 확정되자 다행이라고 실토했을 때 내 고향에 사드가 온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시 머리를 스쳤다. 정체불명의 무기가 동네 앞산에 떡 하니 버티고 선다니 오금이 저리는 일은 당연하다. 운석이 떨어져도 처음은 두렵다. 가까이 가서 보고 열기가 식어 만질 수 있을 때야 두려움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돌덩이 하나도 그런 판에 무시무시하다고 소문이 왁자한 사드라니 결사투쟁으로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충분히 이해 한다.

 문제는 정치다. 절차의 합리성이란 이럴 때 유용하다. 사드는 바로 연일 망원경 들고 파안대소하는 북한 정권 때문에 제기된 문제다. 사드 아닌 다른 대안이 있다면 합리적 대안을 내놓으면 된다. 북쪽 스피커에서 떠들거나 중국 공산당 기관지 사설에서 주장하는 이야기를 재탕하는 수준이라면 입을 닫아야 한다. 이런 판에 박쥐라니, 딱한 대한민국 야당이다.

 툭하면 터져 나오는 부정투표 발언부터 독재 운운까지 박근혜 정권 3년 내내 줄기차게 발목 잡은 정치가 우리 야당의 현주소다. 사드 문제가 이만큼 꼬인 데는 정부 여당의 자충수도 있지만 야당의 발목잡기가 안보에까지 뻗친 결과이기도 하다. 사사건건 정권의 발목을 잡으면 집권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는지 모를 일이나 천만의 말씀이다. 국민은 현정부의 실정에도 지쳐가지만 야당의 발목잡기에는 신물이 난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수사를 거둬야 한다. 이미 사드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속내는 모두 드러내 놓았다.

 문제는 대안이다. 집권은 전략적 모호성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의 실효성을 부각하는 것이 먼저다. 햇볕이 능사라고 이야기 하지말자. 나그네 외투를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북쪽은 나그네가 아니라 무뢰배다. 박쥐의 두뇌로는 도저히 파악하기 힘든 존재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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