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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덕대 교수

오늘 만나볼 소설 속 주인공은 영국 작가 서머셋 모옴(1874~1965)의 장편소설 '달과 6펜스'(1919)의 주인공 스트릭랜드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것은 아마 고등학생 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40여 년 만에 다시 읽어 보고, 여느 소설처럼 담담하게 읽어 내린 내 자신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 책은 소녀시절 나에게 적잖은 영향을 주었으며, 항상 내 뇌리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언젠가는 다시 한번 읽어 봐야지 했던 책이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어 보고, 고등학교 시절 왜 이 책에 몰두했었나 하는 의문을, 요 일주일간 화두처럼 생각하고 다녔다.

 아직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분명히 나는 당시 이 책을 읽고 주인공이 '항상 깨어 있어야 했다.'라는 말에,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나도 항상 깨어 있어야지 하면서, 잠을 자지 않고 언제까지 깨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도전을 해 본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 이틀을 꼬박 안 자고 깨어 있은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만 나올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게 '달과 6펜스'는 그런 강열한 인상이 남아있는 소설인 것이다. 이 소설은 천재화가 고갱을 모델로 해서 그의 예술혼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소설은 스트릭랜드라는 주인공을 '나'라고 하는 관찰자인 소설 속 작가가 그리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런던에서 주식중개인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는 40대 가장인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직업을 버리고, 또한 부인과 아이들을 버리고 그토록 원하던 그림을 그리겠다며 영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간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낡고 저렴한 호텔을 전전하며 병과 굶주림 속에서 가난하게 살지만, 자족하면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그곳에서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동료 화가 스트로브를 만난다. 스트로브는 상업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예술적인 고뇌가 없는 화가로 스트릭렌드의 아낌없는 후원자가 된다. 스트릭렌드가 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스트로브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간호를 해 준다.

 그런데 여기서 스트로브의 부인이 스트릭랜드에게 사랑에 빠지고 만다. 스트릭랜드가 그녀의 사랑을 끝까지 받아주지 않자, 그녀는 자살을 하고 만다. 이 충격으로 스트로브는 파리를 떠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고, 스트릭랜드는 자신이 평생 찾아다니던 곳이라고 느낀 타이티섬에 정착하게 된다. 이때가 스트릭랜드의 나이 47세였다.

 그곳에서 원주민인 아타라는 여인을 만나 두 아이를 낳고 살게 되는 데, 3년 뒤 스트릭랜드는 나병에 걸려 죽게 된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자신의 집의 벽에 그린 최후의 역작은 그의 유언대로 불태우고 만다.

 현실적으로 40대 가장이 어느 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집을 나간다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비난을 할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구해준 친구를 배신하고 한 가정을 풍비박산으로 만들어 버렸다면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사내로 낙인 찍혀 버릴 것이다.

 지금의 나 한테 스트릭랜드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 그 해답을 소설 제목에서 찾아보고 싶다.

 '달과 6펜스'에서 '달'은 서구문명사회에서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나 진실, 광적인 예술성, 고고한 이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6펜스는 당시 동전 중 최소 금액이었다고 한다. 당시 영국의 화폐 단위는 12진법을 사용해서 6펜스, 12펜스로 했는데, 나중에 10진법으로 바꾸어 10펜스, 20펜스로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6펜스는 세속적인 욕망, 애환, 암울한 현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발 밑에 떨어진 6펜스를 바라보자면, 머리 위에 떠 있는 달을 볼 수 없고, 머리 위에 떠 있는 달을 보고 있으면, 발 밑에 떨어져 있는 6펜스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발 밑의 6펜스를 직시하면서 달을 쳐다 보면서, 매일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발전적으로 이끌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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