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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淆)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에 민루락(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에 원성고(怨聲高)라.(금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만백성의 피요./ 옥쟁반에 담긴 맛 좋은 안주는 백성의 기름이라/ 촛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래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망소리 높더라." 우리의 고전 <춘향가>에 나오는 시다. 한양으로 떠나 과거에 급제하고 금의환향해 학정을 일삼는 변 사또에게 건넨 시다.

 현대차 노조가 벌써 열 번째 파업을 했다. 생산피해액만 1조원이 넘었다. 단순계산을 해도 1·2차 협력업체도 5,000억 원 이상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자체 문제도 아니고, 천재지변도 없는 멀쩡한 날에 이런 손실을 떠안은 중소업체 경영자들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갈까.
 경영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 보다도 더한 고통은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다. 죄가 있다면 '파업'을 일삼는 노조가 있는 모기업과 운명을 함께 한 탓이다. 울산 명촌을 비롯해 전주 아산공장 인근 지역에서 현대차 근로자를 상대로 이런저런 장사를 하는 영세상인들의 원성 역시 만만찮다.
 다만 미우나 고우나 다시 고객으로 모셔야 할 사람들인지라 앞에 대놓고 비난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들끼리 얘기를 할 때는 입에 담지 못할 원성을 퍼붓고 있다.
 현대차 노조의 파업이 계속되자 참다못한 한국자동차협동조합에서 노사 대표에게 서신을 보냈다.
 모기업 노조의 갑질에 죽어나는 을(乙)들이 눈물어린 호소를 한 것이다. 표현이야 젊잖게 했겠지만, 사실은 읍소나 다름없다. 이 협동조합은 국내 자동차 부품 산업계를 대표하는 단체다.
 그럼에도 노조는 오불관언이다. 금속노조 동조파업, 현대차그룹사 노조 공동파업, 현대중공업 연대파업, 교섭촉구를 위한 파업 등 명분도 다양하다.

 지난 5월에 시작된 현대차 임급교섭이 벌써 100일이 다 되어 간다.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하지만, 일개 기업 노사가 임금교섭을 위해 이처럼 오랫동안 교섭에 매달려도 문제가 없는지 모르겠다. 서른 명에 이르는 회사측 교섭위원들은 자기 부문 책임자들이다.
 그들은 교섭이 없어도 두 손 발이 부족할 것인데…. '명차의 산실이 되자'는 구호가 무색하다. 남들은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 먹거리 찾기에 분주한데, 생산라인까지 멈추는 여유를 부려도 되는지 묻고 싶다.
 한 나라의 자동차산업이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중소 협력업체가 먼저 건강해야 한다.
 낙락장송일수록 뿌리와 가지가 튼튼하듯이 말이다. 부품 수만큼이나 많은 협력업체와 동반관계를 맺고 있는 차산업은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결코 예사로 여겨서는 안 된다.
 봄날 새싹이 솟듯이 여기저기서 노동조합이 생기던 87∼88년 당시 현대차는 부품업체 노조의 파업으로 애를 태운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모기업 노조가 연례행사로 벌이는 파업으로 일손을 놓은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파업이 당시 모기업을 골탕 먹인 데 대한 보복은 아닐테고. 어쨌든 만인이 싫어하고 비난하는 악성 파업을 반복하다가 자칫 '한방에 훅 가는' 비극을 면하기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지 묻고 싶다.
 21일로 끝나는 리우올림픽에서는 많은 이변이 연출됐다. 선수들 입에서 "이제 랭킹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게 꼭 운동경기에만 있을까. 내년이면 현대차도 창사 50주년이 된다. 솔개가 오래 살기 위해서는 닳은 부리를 새로 다듬는다. 갑각류는 기존 껍질을 벗어야 성장을 할 수 있다.
 현대차 역시 존립과 성장을 하려면 낡고 묵은 부분은 과감히 쇄신해야 한다. 그 중 가장 급선무가 바로 파업관행이 아닐까 싶다. 자기 발등을 찍고, 원성만 자초하는 파업은 정말 안 될 일이다.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은 싸움을 피한다. 현대차노조가 진정 실력 있는 노조로 거듭나려면 습관처럼 되풀이하는 '파업'부터 근절해야 한다. 파업은 노조가 논리적으로 사측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노조는 자기 회사가 아닌 경쟁사 노조의 행보를 주시해야 한다. "지금 어느 구석진 곳에서 창업하는 젊은이가 제일 두렵다." 마이크로 소프트(M/S)를 창업한 빌 게이츠의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중국 변방에서 별 볼일 없는 기업으로 취급받는 차 회사가 언제 현대차의 가장 버거운 상대가 될지 누가 아는가.

 실력있는 화사와 맞짱을 뜨기 위해서는 노조도 실력을 키워야 한다. 파업은 무능한 노조가 가장 유혹을 느끼는 카드다.
 나올 패가 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협력업체와 지역민의 원성이 더 높아지기 전에 파업부터 철회해야 한다. 용기와 결단력이 없으면 이런 일은 하고 싶어도 못한다. 현대차지부의 진짜 실력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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