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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논설위원

'꼰대' 수난 시대다. 이 세상의 부조리는 꼰대 탓으로 돌려진다. 술자리에서건 TV 개그에서건 꼰대를 밟아야 사람대접 받는다.

 여야 정치권은 꼰대색 지우기에 여념이 없다. 꼰대질, 꼰대 마인드로는 내년 대선에서 정권을 창출할 수 없다는 절박감을 느끼는 듯하다. 어느 정당의 싱크탱크는 연고주의와 획일주의, 권위주의를 꼰대적 행태로 규정하고 박멸을 주문했다.

 심각한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날로 벌어지는 경제적 불평등은 당연히 꼰대들의 죄업으로 열거된다. 때론 직장에서 상사의 정상적인 업무까지 꼰대질로 치부된다. 출퇴근 시간 지키라는 잔소리, 왜 이렇게밖에 일을 못 하느냐는 나무람, 옷차림이 단정해야 한다는 훈계, 술자리 예의를 지키라는 조언, 과거의 영웅담이나 고생담, 이 모두가 꼰대 행태다.

 꼰대의 사전적 정의는 '늙은이나 선생님을 뜻하는 은어'이지만, 기성세대 전반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헬조선을 만든 원흉이라는 혐오와 조롱이 함축됐다.

 어느 시대에나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마찰은 있었지만 정년과 수명이 연장되고, 일자리와 복지를 둘러싼 세대 갈등이 커지면서 꼰대에 대한 공격은 갈수록 험해지고 있다. '어른'이니 '권위'니 하는 말은 이제 사전에서나 찾아야 할 판이다.

 이는 기성세대, 특히 기득권층의 자업자득이다. 뇌물을 받거나 보좌관의 월급을 가로챈 정치인, 총알에 뚫리는 방탄복을 입혀놓고 나라를 지키라는 군대, 법을 지키라고 맡겨놨더니 온갖 비리를 저지른 법조인, 애를 낳아 키울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출산을 독려하는 정부…지은 죄가 커서인지 여기저기서 우박처럼 비난이 쏟아지는데 꼰대들은 말이 없다. 세상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억울한 꼰대들도 많을 텐데 항변은 모깃소리로 들린다.

 나라 구석구석 문제는 많다. 그렇다고 해서 꼰대들이 지옥을 만든 악마처럼 취급받는다면 그건 너무 과하다. 경제 규모가 어떻고, 국민소득이 얼마고 하는 말은 관두자. 대한민국은 나라를 잿더미로 만든 6·25 이후 6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세계 유일의 국가다.

 산업화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면 된다'고 밀어붙였던 70∼80대가 이뤘다. 이들은 6·25를 겪고 밥을 굶어본 세대다. 정치 민주화는 하면된다 세대를 반민주 꼰대라고 몰아세웠던 386세대가 화염병을 들고 주도했다. 지금의 50대, 60대다. 이들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구박을 받지 않으려고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는 393자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해야 했다. 국민교육헌장을 만든 사람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이들은 역사적 사명을 완수했다.

 세상은 유전한다. 하면된다 세대를 수구꼴통이라며 그토록 못마땅해 했던 역사적사명 세대가 이제는 탐욕과 불통의 꼰대로 젊은이들의 공격에 노출됐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지금의 젊은 세대도 극복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니 세월이 더 흐르기 전에 뭔가 흔적을 남기라. 상황은 주어졌다. 이젠 저성장이 고착화한 일자리 고갈의 시대다. 기득권층은 부와 권력을 결코 내놓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잘 나간다는 기성세대는 대부분 뻔뻔하고 준법정신이 희박하다. 질풍노도의 시대에 돈과 권력, 민주화는 거칠게 싸워야 얻을 수 있었다. 먼저 먹지 않으면 먹히는 정글 사회에서 법은 멀었다. 요즘 인사청문회에 나오는 관료나 정치인, 법률가, 교수 가운데 성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 혈연, 학연, 지연이 얽힌 끼리끼리 문화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그래서 마침내 김영란법이 등장한 게 아닌가.

 젊은 세대가 새로운 시대를 열려면 이런 세상을 바로 잡고 정치·경제의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대의 투쟁에 버금가는 힘겨운 노력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전의 세대가 나름의 방식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돌렸듯 젊은 세대도 시대정신에 맞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꼰대가 장애물이라면 능력껏 치우고 지나가시라. 헬조선을 저주하고 문자질, 댓글질이나 해대며 허송세월하겠다면 그도 무방하다. 미래는 꼰대의 세상이 아니라 그대들의 것이니까.

 꼰대들도 떳떳하다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한 건 이제 젊은이가 아니라 양심적인 꼰대들이다. 간, 쓸개 빼놓고 산다고 능사가 아니다. 눈꼴사나운 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어린 친구들에겐 예의를 갖추라고 요구하라. 다만 공감과 소통이 부족하다고 하니 혼자 잘났다고 떠들지만 말고 귀를 나팔꽃처럼 활짝 열어 남의 말을 경청하라. 꼰대들이 책 안 읽고, 외국어 못하고, 정보기술(IT)에 둔감해 쓸모가 없어졌다고 하니 잠 좀 줄이고 공부들 하시라.

 아랫사람에게 시키지 말고 매사 솔선수범하라. 역사적사명 세대는 하면된다 세대에 대한 부양책임은 다하되 손톱만큼도 자녀에게 뭘 기대하진 말라. 요즘 자리 양보하는 젊은이들도 없으니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비를 기대하지 말고 두 발로 꿋꿋이 서라. 죽는 날까지 건강해야 하니 아령 들고 뜀박질하라. 그리고 사랑받지도 못하면서 추하게 오래 살려 하지 마시고 행복하게 죽는 방법을 연구하라. 섭섭하고 억울한가. 징징대지 마시라. 그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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