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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박방희
꽃과 나비 사이
아침과 저녁 사이
하늘과 땅 사이
그대와 나 사이
사이가 없다면
그리움도 없겠지
기다림도 없겠지
사이에 떠오르는
무지개도 없겠지


출처 : 시집『복사꽃과 잠자다』(지혜, 2016)

●박방희 시인 - 경북 성주 출생. 1985년부터 무크지 '일꾼의 땅' '민의' '실천문학' 등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불빛 하나' '세상은 잘도 간다'  등 펴냄.


 

▲ 박성규 시인

콩을 일찍 갈았더니 8월 들어서 단풍이 들고 이내 깍지가 딱딱 벌어져 때 아닌 타작을 시작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마당이나 밭에다가 널어서 말리고 나면 도리깨질로 콩을 털었는데 막상 타작을 하면서도 도리깨가 없어 나무 작대기로 두들겨 패면서 할 수 밖에 없었다.
 도리깨란 것이 그렇다. 기름한 작대기나 대나무 끝에 턱이 진 꼭지를 가로 박아 돌아가도록 하고, 그 꼭지 끝에 길이 1m쯤 되는 휘추리 서너 개를 나란히 잡아맨 형태이며, 자루를 공중에서 흔들면 이 나뭇가지들이 돌아간다.  이 때 꼭지는 도리깨의 중심이 되므로 가위라 하고 한가위 또한 한 달의 중심이 일컫는 말이고 보면 곧 추석이 올 텐데 올 해의 달은 얼마만한 크기로 두둥실 떠오를까.
 가위와 마찬가지로 '사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한다. 두 물건이나 장소의 거리나 공간이 있을 경우를 지칭한다. 그리하여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 셀 수도 없이 사용하지만 막상 사이라는 단어를 두고 생각하면 어리벙벙한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사이를 줄여서 새 또는 틈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박방희 시인의 작품 '사이'는 아주 사소한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런 사이를 앞세워서 크나큰 우주의 중심에 서서 그 중심에 있는 너와 나 사이에서 그리움과 기다림과 무지개를 꿈꾸고 있다. 마치 소년 같다. 예전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대하듯 가까이 다가오는 단어 사이와 가위 어쩌면 같은 맥락의 뜻인지 아닐까.
 사이가 없으면 가위도 없고 도리깨도 없을 진데 늘어놓은 콩을 타작하다 말고 '사이'에 취해서 무지개를 기다리는 여름이다. 박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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