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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 달처럼 탐스런 하얀 얼굴"
 새벽부터 기분이 살짝 들떴다. 새벽 5시를 알리는 알람시계의 죽는 듯 내지르는 비명에 비몽사몽 부스스 눈을 뜨자마자 먼저 창밖을 내다보았다.
 희끄무레하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고 아스팔트는 젖지 않았다. "아휴, 천만다행이다" 안심하고 커피를 내렸다. 악마의 눈물 같은 커피 향에 홀딱 반할 때쯤에 "또 똑 또 똑" 규칙적으로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가 예민해진 청각을 건드렸다. 보일러 연통에 빗방울이 불규칙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비가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일어나면서부터 "빗소리 들리면~" 어쩌고저쩌고 오두방정을 떨어서 그러나 하고 마음을 졸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밝아져야할 창밖은 도리어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하늘은 울다가 그친 아이처럼 시무룩해진, 영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이럴 때는 낙천적 모드로 바꾸는 것이 상책이다. 설마 비가 내릴까봐 하며 짐을 꾸렸다. 하늘에 흰 구름 다섯 명이 여유롭게 마실 커피가 든 보온병과 우산, 혹시 비가 내리면 비를 닦을 수건까지 챙기고 집을 나서려는데 순간 장대비가 쏟아졌다.


 "허참" 낭패가 따로 없었지만 오늘은 이미 정한 날이었다. '비가 내리거나 말거나 무작정 떠나는 날이다'고 생각하며 애써 웃었지만 질펀하게 비가 내리는 날은 운전도 큰 걱정이었다. 안개가 자욱해지면 고속도로는 더더욱 운전이 힘들다.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무척 복잡해졌다.
 코스를 바꿀까, 아예 취소를 할까 하다가 동행인들의 실망이 클 것 같아서 당초 정한 경북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로 내비게이션을 찍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 비는 쉽게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신복로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운전자를 포함해 모두 다섯 명, 우중의 사람들이 승용차 한 대를 맞추었다. 운전자를 빼고는 일상을 탈출한다는 데 고무돼 흥분된 표정이다.
 빗방울처럼 투명한 영혼들과의 여행은 이렇게 출발했다. 다섯 명이 탄 승용차가 물길을 해쳐가는 여객선처럼 서서히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천천히 가면 되겠지 했는데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빗길이 미끄럽다는 것을 발가락 끝에 닿는 감각으로 느꼈다. 운전자의 고충보다는 떠나는 것에 의미를 둔 동행인들의 수다로 차안은 연신 웃음이 소나기로 쏟아졌다. 건천휴게소에 들러서 커피를 나눠마셨다. 하늘은 비가 내리다가 그치다가를 반복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태풍의 영향으로 내리는 비가 찬 기운을 몰고 오면서 섭씨 33도를 오르내리던 수은주가 오늘은 뚝 떨어졌다. 늦가을 같은 평균기온 섭씨 26도는 여행하기에 최적의 기온이다.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기온은 그저 그만이다. 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자 이번에는 여행목적지가 사드 배치로 시끄러운 성주인 것이 찜찜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걱정은 끝이 없나보다"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러쿵저러쿵 두어 시간을 달려서 왜관 IC로 들어섰다. 엊그제 TV에서 보았던 붉은색 현수막들이 쫄딱 비를 맞고 내걸려 있었지만 머리띠를 맨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내용이 가슴 뜨끔한 현수막들을 스치면서 한개마을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승용차 한 대가 있었고 마을은 조용했다.
 마을 분위기에 취해 사진을 찍으려는데 또 여우비가 내렸다. 마을은 농한기이기도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통 보이지 않는, 한적한 시골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단체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할 사람을 찾지 못할만큼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마을은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흙 담장이 훨씬 아름다웠고 정감 넘치는 마을분위기에 모두들 감탄했다. 흙 담장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이유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못살던 시절의 유산 같은 흙 담장을 허물고 블록 담장으로 바꾸라는 정부 설득에도 한개마을 주민들은 끝까지 흙 담장을 고집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의 선견지명이 오늘의 한개마을을 있게 한 셈이다.


 마을 곳곳은 문화재 아닌 것이 없었다. 마을전체가 중요민속자료 255호로 지정돼 있고 조선 세종 때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李友)가 정착해 560여년을 내려오면서 성산 이씨가 집성해 살고 있는 전통 깊은 마을이다. 크다는 뜻의 한과 개울이라는 뜻의 개가 합쳐진 한개마을은 예전에 마을 앞에 나루터가 있어서 대포(大浦)라고 부르기도 했다지만 그 나루터는 메워져서 비닐하우스로 덮인 성주 참외 단지가 됐다.
 마을은 북비고택과 다양한 전통가옥들을 볼 수 있어서 모처럼 찾는 여행객에게 큰 감동을 준다. 유교적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개마을 여행은 여름비에 젖어서 입 다문 배롱꽃의 말 못할 사연처럼 각각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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