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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요 무책임이니, 관용하는 자가 잘못하는 자보다 더 큰 죄다."  도산 선생의 말이다. 명치 끝을 때리는 통증을 느낀다. 8월이 지나가고 있다. 광복이든 치욕의 역사든 건국절이든 우리는 제대로 8월을 짚어보지 못했다. 청와대 환관들의 이야기에 감찰 누설 논란, 경찰청장의 뻔뻔한 얼굴에 정치는 연일 삿대질이다. 모두가 제 방식대로 자기 목의 갈증을 채우려고 안달이다. 아전인수다.

 한중일 외교장관이 일본에서 자리를 함께 한 이후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잠잠하던 위안부 문제는 이제 아예 '지원'이라는 단어로 초점이 옮겨가 일본의 각의가 출연금을 의결하고 외무성이 지원 내역까지 상세하게 브리핑 하고 있다. 제기랄, 누가 달라고 했나.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쥐어주고 튀겠단다. 이대로 가다간 튀는 놈 뒤에서 멍청하게 그림자만 바라볼 형국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본질 흐리기는 일본의 몰염치와 역사왜곡이 시발점이다. 광기에 가까운 일본의 역사왜곡은 일본에게 부메랑이 됐다. 스스로 왜곡하고 조작하다보니 억지가 동원됐고 주변국의 분노를 촉발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위안부다. 소녀상이 만들어지고 추모 분위기가 확산되자 일본은 치졸하게 대응했다.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건립된 소녀상은 일본의 훼방에 관심과 열기를 더했고 전국 각지로 번졌다. 급기야 미국 등 해외에서도 소녀상 건립이 화두가 됐다.

 유난히 뜨거웠던 이번 여름 두 달 넘게 미국 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있는 대한의 청년들이 화제가 됐다. 김현구, 김태우, 김한결, 이 세 명의 청년들은 5,400㎞를 달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도착했다. 주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참석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달리는 도로, 그들이 거쳐간 도시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무심했던 미국인들의 공분을 사게 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철저한 은폐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는 가능한 들키지 않게, 어쩌다 들키면 결코 인정하지 않는 전략으로 위안부 문제를 외면해 왔다. 제국주의 정부가 공식적으로 위안부를 모집하지 않았고 강제 연행하지 않았다는 두 가지 거짓을 옹골차게 쥐고 틈만 나면 펼쳐 보이는 일본이다. 바로 그 일본은 대한민국 땅에 몇 남지 않은 위안부의 산 증인들이 임종의 순간을 맞을 때까지 버티면 된다는 계산을 깔고 있었다.

 위안부 문제가 세계적 관심이 되고 국제 문제로 번지자 일본은 전략을 바꿨다. 평화재단처럼 그럴듯한 포장을 하고 100억 원의 출연금을 내놓으며 보상이 아닌 합의금 정도로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일본이 내놓은 돈의 내용은 이렇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화해·치유 재단)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지출하게 되는 형식이다. 일본 외무성은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작년 12월 28일을 기준으로 생존한 할머니 46분에게는 각각 1억 원, 돌아가신 할머니 199분에게는 2,000만 원씩 지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위안부 지원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과 액수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재단이 위안부 할머니와 가족들을 접촉해 수요를 조사하고, 한·일 양국 정부가 합의한 용도의 범위 안에서 (각각의 경우에) 알맞은 금액을 낼 방침"이라고 말했다. 용서가 먼저고 보상은 뒤의 문제라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일본이 가진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본질과 일치한다. 일본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를 인정한다면 그리고 아베가 나눔의 집을 찾아 살아 시퍼렇게 멍든 가슴 움켜진채 마른 숨 쉬고 있는 할머니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면 사죄와 반성이 맞다. 하지만 무릎 꿇는 순간, 교과서나 독도, 심지어 임나일본부까지 떠벌려 왔던 모든 과거가 치욕으로 돌아온다고 인식하고 있다. 가능한 위안부의 산 증인들이 임종의 순간을 맞을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면 된다는 치졸한 믿음 하나를 틀어쥐고 있는 모양이다 .

 돈을 쥐어주고 슬쩍, 위안부 소녀상 문제도 흘린다. 그러면서 일본은 직접적인 원죄가 없고 관여하지도 않았지만 우는 아이 떡 쥐어주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대국의 도량을 다했다는 선전에 열을 올릴 태세다. 우리는 아무도 용서하지 않았는데 아베의 사인으로 100억이라는 돈이 입금되면 그 이후는 불편해 진다. 일본은 자기네 식으로 100억을 홍보하고 떠들 것이고, 그 소음같은 소리에 몇 남지 않은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파묻힐 게 뻔하기에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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