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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덕대 교수

문학사를 공부하다 보면 반드시 사실주의 문예사조를 처음 실현한 선구자로 프랑스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 '보바리 부인'(1857)을 읽게 될 것이다.

 내가 이 '보바리 부인'을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 세계고전문학 읽기에 여념이 없을 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독서 읽기 만큼은 참 조숙했던 것 같다. 그 당시는 읽어야 할 대상의 책 중의 하나였겠지만, 어떠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는지 그 감정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이후로 40여 년 만에 다시 한번 '보바리 부인'을 읽어 보았다. 이제는 왜 플로베르가 문학사에서 한 줄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있는 작가고, 왜 '보바리 부인'이 고전명작 속에 들어가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문예사조 중의 사실주의란 넓은 의미에서는 공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와 대립하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묘사하는 경향 또는 양식을 말한다.

 그러니까 '보바리 부인'은 플로베르 자신이 수립한 사실주의의 문학의 결정판으로 내놓은 작품인 것이다.

 오랜만에 읽은 '보바리 부인'은 신선한 감격을 안겨주었다. 우선 사랑과 성에 있어서 당시의 사회적 통념을 넘어설 수는 없었지만, 여성이 주도적 역할 했다는 점에서이다. '보바리 부인'보다 약 20년 뒤에 나오는 '테스'의 여주인공은 사회로부터 짓밟히고 상처받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과 비교해 봐도 금방 차이점을 알 수가 있다.

 그럼 '보바리 부인'의 여주인공 보바리 부인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보바리 부인에 대해서 알아본다고 하는 것은 줄거리 자체를 이야기 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기에 그녀를 중심으로 그녀의 삶에 대한 단면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보바리 부인 엠마는 유복하지만 보수적인 농민의 딸로 태어나 사춘기를 수녀원의 부속학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보냈다. 그곳에서 소설을 탐독하면서 순수한 감수성과 결혼에 대한 로맨틱한 환상을 갖게 된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가사 일을 돌보며 지내다가 그 지역의 의사인 샤를르 보바리 눈에 띄게 된다. 엠마는 의사 보바리의 열렬한 구애를 받고 결혼을 한다.

 그러나 시골 의사 부인이라는 현실은 엠마에게 있어서 자신이 꿈 꾸던 결혼 생활은 아닌 것이었다. 엠마는 사람은 좋지만, 둔하고 대식가이며 분위기 없는 남편에게 실망을 하게 되고, 어느 날 근처 성에서 있었던 무도회에 초대받아 참석한 것을 계기로 소녀시절에 품었던 사치스러운 꿈과 낭만적인 열정이 되살아났다.

 엠마는 레옹이라는 젊은 법률서기와 알게 되고 서로 호의를 갖게 되지만 결혼한 여자로서의 도덕적 윤리를 지키기 위해 플라토닉 러브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그렇지만 이때 엠마를 유혹한 사람은 바람둥이고 돈 많은 로돌프였다. 엠마는 로돌프에게 빠져 방탕한 생활과 낭비벽으로 파산에 이르게 된다. 엠마가 추구하는 행복은 환상이었던 것이다. 그 환상이 깨지는 순간은 그녀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결국 엠마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엠마의 남편인 의사 보바리는 사랑하는 엠마와 결혼 한 후 행복 속에서 지낸다. 하루하루 일상의 반복 속에서 그는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 그러나 엠마의 불륜으로 그의 일상은 깨져버리고 만다. 정말 엠마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던 것일까.

 "오로지 사랑이라는 습관 하나가 보바리 부인의 행동거지를 바꿔 놓아 버렸다. 그녀의 시선은 더 대담해졌고, 말은 더욱 자유분방해졌다. 심지어 마치 세상을 비웃기라도 하려는 듯."

 이 문장은 엠마가 로돌프에게 빠져있을 때의 표현이다. 너무 인간의 심성의 변화를 사실적으로 묘사를 해서 때로는 추악하기까지 한데, 이 문장에서 느끼는 것은 사랑의 습관이 어떠한 것이냐에 따라 사랑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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