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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10월이 되면 운전면허 다음으로 전 국민의 자격증이라고 할 수 있는 공인중개사 시험이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입장에서 필자에게 가장 난감한 과목은 민법이다. 인간은 사회를 이루어 생활하게 마련인데, 개인 간의 재산관계, 신분관계 등 사회생활 전반을 규율하는 법이 민법이다. 그 법조문이 천여 조를 넘는 방대함은 논외로 하더라도 그 해석에 해당하는 판례를 공부하는 것은 더욱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굳이 민법을 거론하는 이유는 민법은 사인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일 뿐 실제 타인과 분쟁 등이 발생하면 소송 등 법적 구제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법원에 그냥 가서 소를 제기할 수는 없고, 법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하는데 이런 절차를 기술한 법을 절차법이고 부른다. 대표적인 예로 민사소송법이 있다.


 절차법은 말 그대로 '절차에 관한 법'이다. 민법 등 실체법은 그 조문 내용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등 학설이나 판례마다 다른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즉, 100% 일치하는 의견이 있을 수 없다. 그에 비해 비록 논점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절차법은 실체법에서 정하고 있는 내용을 어떤 절차를 거쳐 시행하느냐 하는 문제만 다루게 된다. 물론 그 절차가 옳은 것인가의 논의는 있을 수 있지만 거기에서는 실체법 상의 내용의 가부를 따질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 원자력발전소에서 가동 중에 발생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이 입법예고 된 후 신문 지상 등 사회 일각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이 졸속 입법이라고 비판하고, 원전 주변지역에서는 '제2의 부안사태'가 초래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으로 지역사회가 술렁이고 있다고 한다.


 원자력발전소는 핵연료의 핵분열 반응을 이용해 열을 발생시키고 그 열을 이용, 전기를 생산하는 원리로 돼 있다.
 원자력발전에 쓰이는 천연 우라늄 핵연료는 우라늄(U-235)이 약 3~5% 들어 있으며, 발전하는 과정에서 우라늄 농도가 줄어들어 약 1% 정도가 되면 더 이상 연료로서 기능을 하지 못해 새로운 연료로 교환해야 한다. 더 이상 발전용 연료로 기능을 할 수 없는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열과 방사능을 가진 물질로 바뀌기 때문에 이 사용후핵연료를 국가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로 지정해 안전을 위해 특별히 관리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이나 필요성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탈원전(脫原電)의 논리는 전 국민의 공감대와 여론이 형성되고, 사회 구성원 총의에 따라 민주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국민투표로 결정해도 되고, 법적인 근거만 있다면 해당 지역의 주민투표로 찬반을 물어 그에 따라 조치를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전 국민이 원한다면 독일의 사례처럼 원자력발전을 중단하면 된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고려해야 될 것은 이미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에 의존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 의하면 원자력발전에 의한 사용후핵연료는 매년 750톤 정도 발생하며, 2015년 기준 총 1만4,000톤이 원전 부지 내에 저장돼 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수년 내에 각 원전별로 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는 사용후핵연료 처리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사용후핵연료의 가장 안전한 최종 관리방안은 지하 수 백 미터 심부 암반에 영구 격리하는 심층처분방식이라는 것이 과학계의 중론이다. 핀란드의 경우에는 작년에 건설허가를 취득해 올해도 영구처분장 건설을 착수할 예정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영구처분장의 전 단계인 중간저장시설의 부지도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의 찬반논쟁을 떠나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을 세우는 것이 더 시급한 당면과제이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에 출간된 '핵폐기장 뒤집어보기'의 저자는 국제공동폐기장을 설치하자고 주장한 적이 있다. 현재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바로 보고 무엇을 해야 할 지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그림을 그리자고 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을 세우는 일은 지금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하는 과제임이 분명하다. 시행도 해보지 않고 절차법의 제정 자체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소모성 논쟁을 지양하고, 진정 후손을 위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자.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고 음식물을 섭취 안 할 수는 없다. 이런 배경 하에서 입법예고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법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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