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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서아름

난 대학시절 학교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했다. 독서실에는 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던 도서열람실에는 책들만 빼곡히 꽂혀있었지 학생들이 많진 않았다.
 특히 좋아하던 서양 고전소설이 있던 곳은 구석지고 학생들이 더더욱 찾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의 낡은 책 냄새와 특유의 서늘하고 싸늘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읽을 책을 찾아내던 일은 대학시절 나에게 신나던 일 중 하나였다. 프랑스의 여류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글을 아주 좋아하지만 그녀의 소설 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란 제목을 발견할때면 늘 '아니요~' 라고 스스로 대답하고는 읽지 않았다. 결국 서른즈음에 작곡가 브람스를 좋아하게 되고 나서야 이 책을 읽게 됐다.

 이십대의 나는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너무 무겁고 버겁고 힘들었다. 이십대 후반이 돼서야 그의 음악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좋아하게 됐다. 여우 같은 음악이 아닌 곰 같은 음악? 하지만 너무나도 섬세하고 뭔가 알 수 없는 진실한 느낌에 마음이 결국 흔들리는 느낌이다.
 독일 태생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낭만주의 시대의 고전주의자라고 불릴 만큼 모든 음악이 새로운 것을 찾아가던 시절 홀로 옛 것을 찾아 베토벤의 고전양식과 바흐의 바로크 양식까지 가미해 작품을 만들었다. 브람스를 말할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과 클라라( Clara Josephine Schumann 1819-1896)다. 슈만은 브람스를 천재음악가로 세상에 소개하며 그를 특별히 생각했고 브람스 또한 둘을 굉장히 존경했다.

 슈만은 클라라와 결혼하기 위해 5년간 긴긴 법정공방을 벌여야 했는데 그 이유는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슈만의 스승이었던 비크선생의 반대 때문이었다. 클라라는 장래가 촉망받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법대를 자퇴했던 슈만은 뒤늦게 음악공부를 시작한 미래가 불투명한 음악가였으며 그의 정신질환도 스승의 눈에는 이미 조금씩 보여졌지 싶다. 끝내 그들은 결혼하지만 슈만의 정신질환은 클라라의 헌신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자살시도를 하는 등 점점 악화돼 정신병원에서 지내다 결국 그곳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이때 슈만의 부재로 힘들어하는 그의 가족을 브람스가 돌보면서 클라라와의 인연이 깊어지지만 끝내 그녀는 브람스의 마음을 받아주진 않는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된 클라라는 그 이후 42년간 슈만을 지키며 살아가고 그런 그녀의 곁을 브람스 역시 지켜준다. 20살에 클라라를 처음 만나 14살 연상이였던 그녀를 44년간 마음속에 품고서 말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그녀와 너무나 비슷한 모습으로, 평생을 그렇게 슈만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다 클라라가 죽고 난 뒤 일년후 병으로 숨진다.

 이런 브람스의 러브스토리를 알고 나면 그 남자의 절절한 마음이 녹아나는 그의 음악이 더욱이 애절하게 들릴까. 끝내 쏟아내지 못한 절제해야만 했던 그의 마음이 음악속에서 들릴까.
 브람스의 작품중 대중적인 '헝가리 무곡'은 21개의 곡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5번은 영화 '과속스캔들'에서 차태현의 손자로 나온 기동이가 유치원에서 모두를 놀라게 하며 연주했던 곡인데 가장 대중적인 곡이다. 나도 몇곡을 피아노 듀오 연주회에서 연주했는데 그중 4번을 연주할때면 늘 돌아가신 아빠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랬다. 연주회가 끝나고 엄마가 말했다. '브람스를 듣고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 참 이상하지? 내가 엄마한테 아빠 생각하면서 연주했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난 책을 읽기 전 첫장을 열어보는 그 설렘이 가장 좋다.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과 브람스의 음악, 비가 그친 가을의 높은 파아란 하늘과 폭신해 보이는 구름, 숨쉴때 느껴지는 약간 차가운 옅은 바람까지 불어준다면….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온다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네. 눈물나도록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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