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풍 차바가 울산을 삼킨 지난 5일. 울산 남구에 사는 나의 아버지는 '혹시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넘게 남구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버지는 한 번도 자연재해를 겪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날은 좀 달랐다. 앞서 규모 5.8의 지진을 경험했던 탓이다. 아파트에 주차장이 부족해 여천천 근처에 세워뒀던 자동차가 침수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불안한 생각은 현실이 돼 있었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에 자동차는 바퀴 절반 이상이 잠겨 있었건 것이다. 바로 물이 차올라 지나갈 수 없는 길을 피해 높은 곳으로 자동차를 옮겼다. 불과 5분도 안되는 시간만에 다른 자동차들은 내부까지 침수됐다.
 "별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 떨지 마라" 무뚝뚝한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인 아버지가 자주했던 말이다. 지진이 오든, 태풍이 오든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태풍 차바가 왔던 그날 아버지의 행동은 그동안 아버지의 기준대로라면 분명 '호들갑'이었다.
 경주 지진 이후 울산시민들이 생존배낭를 준비하고, 태풍 이후 추가 비 예보에 지하 주차장이 아닌 인근 도로에 차량을 주차하는 등의 행동도 불과 한 달전만 하더라도 호들갑이라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호들갑이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지키고 재산을 지키는 일이 돼버렸다.
 씁쓸한 것은 이 같은 호들갑에 정부와 지자체 등 행정당국의 부실한 대응이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지진이 발생했을때도 태풍이 왔을때도 정부의 긴급재난문자는 항상 뒷북이었다. 이번 태풍으로 쑥대밭이 된 울주군 반천현대아파트 주민들은 대피 방송조차 듣지 못했다.
 행정당국이 사실상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는 사이 시민들은 스스로 지키기 위해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그래도 시민들은 태풍의 상처도 지진의 공포도 이겨내고 희망을 찾고 있다.
 잇따른 자연 재해로 조금만 예측을 벗어나도 큰 구멍이 생기는 우리 재난 시스템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늑장 대응보단 과잉 대응이 낫다. 이제 행정당국이 자연재해 대책 마련에 호들갑을 떨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