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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석호
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번 달에는 필자가 병원 조회의 인사말을 하게 되어있다.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부담이 된다. 개인 상담을 주로 하니까 집단이나 조직 같은 곳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또한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성격에도 맞지 않지만, 그러나 나 자신 수련을 위해서는 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하며 임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병원 내 소모임에서 다음 조회에 인사말을 하게 되어 있다고 하니, 그 중 한 간호사가 그럼 이야기할 내용을 여기서 한 번 말해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야기할 것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그곳에 참여하고 있는 청중들과 직접 소통하려는 것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리 준비하여 이야기하려 했던 것을 그곳에서 이야기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고, 차라리 그곳에서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 그곳 현장의 분위기를 살려내면서 사람들의 관심사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물론 즉흥적으로 하는 것이니 위험부담이 있는 것인데 뒤죽박죽이 될 수 있고, 이야기가 끝나면서  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말한 당사자도 그 때 떠오르는 생각에 빠져 방향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융 심리학에서는 이런 발표나 강의는 '무의식'이 자신을 도와주어야 제대로 강의할 수 있다는 말도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사실 그 분위기가 이야기에 맞아야하는 것인데, 그 분위기라는 것이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고, 비유하자면 우리들이 그 안에 녹아있는 것처럼 이미 '화학작용' 같은 것이 일어나 있는 우리인 것이다. 나는 그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할 것이고, 그중에는 서로 꺼리는 사람도 있고, 서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마음을 열고 있는 사람도 있고, 닫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분위라는 게 무의식적인 우리 모두 사이의 관계쯤 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런 의미로 분위기를 생각해 볼 때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어떤 것일까. 여야가 국회에서 단식 등의 행동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고, 지진과 태풍의 자연재해도 있었고, 그 여러 사건들이 녹아 있는 것이겠지만, 필자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이의 관계를 주목한다.

 필자의 멘토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통하여서라고 역설한다. 그 분위기가 잘 받아들여지고 충분히 동화된다면 그것이 우리와 세계와의 관계가능성이 실현되는 것이라는 뜻의 말을 한다. 이렇게 보면 사실 우리는 결코 혼자서 자기실현을 하는 것이 아니고, 혼자라는 것은 세계에 있지도 않고 우리는 더불어 존재( Being-With)인 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세계 내 존재'인 것이며, 서로 대치하고 '적'으로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지만, 더불어 살아야 하는 관계이다. 상대 파트너가 없으면 자신도 없는 것이고, 상대 파트너가 사라진다고 세상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며, 세계는 공유하면서 같이 나누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조회에서 이런 철학적 이야기를 말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병원에서 필자에게 '직접화법'으로 말하는 친한 한 간호사는 이런 철학적 이야기를 하면 농담이었지만 잘난척한다는 언급을 했었다. 이 말을 듣고 필자는 얼핏 느꼈다. 내가 어디쯤에서 거슬리고 있나하는 것인데, 그 거슬리는 분위기를 잘 해석함으로서 우리의 관계나 나 자신 또는 그녀 자신의 '그림자'를 잘 분화하여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회에서 이런 식으로 디테일한 것을 다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야기 거리 하나는 준비 한 것이 있는데,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들었던 이한위 배우의 이야기이다. 그가 여배우들과 가진 촬영장에서의 경험인데, 흥미로운 일화라서 직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 여배우들은 스타이기 때문에 정말 아름다운데, 그들조차도 그 미모가 흐려지며 못난 부분이 드러날 때가 있다는 것으로, 촬영이 늦게까지 이어져 밤 3시쯤 되면 잠이 오며 화장도 벗겨져 이그러진다고 했던 것 같다. 배우라고 어떻게 미운 부분이 없을까. 그리고 새벽 3시에도 초저녁의 그 얼굴 그 상태라면 그것이 과연 정말 아름다움일까 싶다.

 그런데 필자는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간호사들을 보면 화장기도 없고 지친 맨얼굴이지만 그들이 예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정말 얼굴이 예쁜 간호사들이 많지만, 사실은 그들이 밤새 일하고 환자들을 돌보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이제는 돌아가는 그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할까, 즉 분위기에서 예쁜 것이다.
 그런 분위기의 그대들을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이니 힘들더라도 기운 내라는 말로 조회를 끝내고 싶다. 정말 이런 나의 생각이 전달이 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든지 우리가 이런 저런 이유로 대치하고 있고 우여곡절을 겪는다 하더라도 아마도 세계는 여전히 우리에게 그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이고 암중모색이지만 우리는 그래도 그 의미를 찾아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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