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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양 시인
그대에게 수수께끼 하나 낼까요? 애들도 아니고 갑자기 웬 수수께끼냐고요? 그러게요. 옥상에 이불 빨래 널고 내려오는데 불쑥 수수께끼 하나가 만들어졌어요. '내가 울고 싶을 때 맘 놓고 울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발로 꾹꾹 밟아 짜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이불 같은 울음을 펼쳐놓을 그런 장소 말예요. 진지하게 울음 장소를 찾아본 그대는 연암 박지원의 好哭場論을 떠올릴 것이고, 잘 웃는 그대는 그 무슨 축축한 수수께끼냐 약 올리듯 방글거리겠지요.

 그것도 재주라고 남들보다 더 잘 울다보니 울기로 알맞은 장소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울기로 작정하고 찾아다닌 울음터는 아니었어요. 처음엔 몰랐죠. 언제부턴가 그 곳에서 울고 있었어요. 그런 나를 보며 아하, 이곳이 오래 전부터 나의 울음터였구나 새삼 놀라고 반갑기도 했지요. 울 일이 없는 사람들한텐 감정이 늘어져 보이고,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답답이겠지만 그 답답이한테도 헤픈 눈물이 여간 고역이 아니랍니다.
 흘리는 눈물도 내 것, 남의 것이 있다는 것을 울면서 알게 되었어요. 맹자의 四端 중 惻隱之心만 유독 넘쳐서 누가 슬픈 이야기를 하면 약이 되는 위로의 말은 해주지 못하고 먼저 울어버리니 오히려 달램을 받는 고약한 일도 많아요. 그래도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니 창피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의 속을 찢고 나오는 울음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요. 우선 나 이러해서 운다고 울다가 그 이유를 말하기도 싱겁고, 무엇보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보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남몰래 울기 좋은 그 장소가 어디냐고요? 그보다 내가 수수께끼를 냈으니 헛답이라도 하나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는 게 벼슬인 줄 아는 내가 그걸 핑계로 또 울면 어떡하려고요. 나이가 들다 보니 우는 일도 식구의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혼자 오래 전부터 울던 곳은 나의 자동차 안이에요. 그런 날이 있잖아요. 세상에 혼자인 듯, 혼자만 불행의 덤불 속에 묶여있는 듯 불안한 때. 의사도 조제약도 필요 없어요. 의학지식이나 조제약을 먹어 그 고통을 삭힐 수 없으니까요.
 눈물이 약이죠. 뜨거운 눈물이 달라붙은 오염 같은 마음 때를 처벅처벅 밟아 녹여냅니다. 단단히 날 잡아 이불 빨래하듯 말예요. 준비물은 따로 없어요. 식구들이 각자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슬그머니 동네 슈퍼 가듯 슬리퍼 신고 나가서는 탁, 문을 닫아요. 여러 눈을 피해 숨어들었으니 더 이상은 나를 숨기지 않아요. 달래듯 가만히 양아, 하고 내 이름을 부르면 가여운 아이 하나 내 옆에서 울기 시작해요. 알아요. 자기연민이 심한 편이죠.타고나길 그러한 걸 어찌 하겠어요. 단단해 지려고 인기 좋은 자기계발서도 몇 번 읽어봤는데, 사탕발림이고 소용이 없더라고요. 타고난 성향이 잘못인가 반감도 들었어요.

 이렇게 총정리하듯 몰아 울던 그곳이 요즘은 자주 쓰입니다. 자식을 넘어 나의 분신이었던 개, 복이가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이죠. 복이를 보내고 나서 신이 나약한 인간을 위해 개를 곁에 보냈다는 문구를 어디서 읽었지요. 복이가 가고 나서 그녀석이 나한테 온 이유를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복이와 함께 했던 지난 8년이 그렇게 행복하고 당당했나. 그러면 녀석이 떠난 지금은 어떻겠나. 나의 반쪽이 뜯겨버린 듯 허망함과 그 녀석에 대한 그리움이 눈물범벅 운전을 하게 합니다. 자동차는 무엇보다 들킬 염려가 없어 울기 참 좋은 장소예요. 달래듯 불러내던 내 이름대신 복아, 하고 먼저 떠난 나의 반쪽이를 부릅니다. 복아, 안녕? 복아, 잘 있니?

 글을 객관화시키기 위해 그대를 지칭하고 수수께끼를 만들며 부산을 떨었는데도 나의 개 이야기가 나오니 황망한 울음이 넘쳐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여기는 대학 도서관이라 사방에 풋풋한 기운이 넘치는데, 손수건을 들고 얼굴을 가렸다 엎드렸다 나이 먹은 여자의 얄궂은 모양새가 저 아름다운 기운에 얼룩을 만들까 미안합니다. 이러니까 나만의 울음터가 좋다고요. 몰래 우는 것이어서 흉이 되지 않고, 실컷 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차 운전이 걱정된다고요? 손등으로 눈물 닦으면서 전후방 좌우주시도 잊지 않고 합니다. 가장 나답고 마음이 움직이는 시간이라 운전이 위험하지는 않아요. 아이가 놀이터에서 실컷 놀 듯 나의 울음터에서 우는 놀이를 한다고 하면 그대가 안심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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