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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비망록. 5 -방어진
                                                                                    
                                                                                  김성춘
 
세상의 어떤 더러움도
세상의 어떤 힘도 반짝임도
낮은 것은
모두 물이 되는가.
 
살아가면서 쌓이는 우리의 슬픔도 나의 치욕도
눈물도, 오줌도, 냄새 나는 분비물도
낮은 것은 모두 물로 만나
가장 깨끗한 바다를 이루는가.
 
누군가 멀리서
굵은 첼로 현을 켜고 있다.
 

뀱 김성춘 시인- 부산 영도 출생. 1974년 '심상' 으로 등단. 동리문학상. 바움문학상. 최계락문학상. 카톨릭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방어진 시편' '섬. 비망록' '물소리 천사' 등이 있다.
 

 

▲ 권기만 시인

어떤 힘의 소용돌이가 저토록 힘차고 거침이 없으랴. 누구나 한번은 떠밀리거나 부딪쳐 바닥이라는 데를 다짐받듯 맞닥뜨렸을 것이다. 사는 일은 늘 자신과 제도 사이의 줄타기 혹은 타협의 연속이고, 끊임없는 타이름과의 시소가 아니던가. 오늘은 배고프고 내일은 추워도 모래는 헐벗지 않기 위해 모질게 자신을 다그쳐도,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거나 지금껏 이룬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내려놓을 수 있어야 다시 살아진다고 어울려진다고 완곡하게 타이르고 반성하고 있다. 오기도 명예도 뭣도 다 내려놓고 그 바닥에서 바닥의 것들과 다시 어울려야 한다. '낮은 것은 물이 되는 가' 반어법을 썼지만 통렬한 깨우침에 닿지 않고는 맞닥뜨릴 수 없는 엎드림이다. 화해는 나부터 내려놓은 것이다. 지위도 뭣도 다 내려놓아야 함께 어울릴 수 있고 그 속까지 나눌 수 있다. 사람은 결코 혼자 살아지지 않는다는 걸 완곡하게 일러주고 있다. '살아가면서 쌓이는 우리의 슬픔도 나의 치욕도 눈물도, 오줌도, 냄새 나는 분비물도 낮은 것은 모두 물로 만나 가장 깨끗한 바다를 이루는가' 그렇다 낮은 것은 가장 깨끗한 어울림을 놓지 않는다. 서로를 씻어 기어이 깨끗하게 만들고야 만다. 낮은 것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살아가기 팍팍할 때 한번쯤 물이 되어 보는 것, 물이 되어 나와 너를 씻어 새로워져 보는 것이다. 그 새로워진 깨끗함으로 다시 세상 속으로 나서보는 것이다.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도 내려놓는 연습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초래된 비극이다.'누군가 멀리서 굵은 첼로 현을 켜고 있다' 아마도 저 첼로소리는 분명 누군가의 커다란 어깨로 켜는 것일 것이다. 허물도 더러움도 참혹한 슬픔도 다 씻어 내려놓는 그 품으로. 권기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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