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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시   
                                                                    김삿갓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 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대로 맡기리라.
 
손님 접대는 집안 형세대로
 
시장에서 사고팔기는 세월대로
 
만사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나세.


竹詩                                                        죽시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차죽피죽화거죽   풍타지죽랑타죽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반반죽죽생차죽   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빈객접대가세죽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만사불여오심죽   연연연세과연죽
 

*한자의 훈(訓)을 빌어 시어를 절묘하게 구성했다. 此 이 차, 竹 대나무 죽: 이대로 彼 저 피,  竹 : 저대로 化 화할 화(되다), 去 갈 거, 竹 : 되어 가는 대로 風 바람 풍, 打 칠 타, 竹 : 바람 치는 대로 浪 물결 랑, 打 竹 : 물결치는 대로

여행노트

담양이고 어디고, 요즘은 태화강 십리 대숲이 전국의 명소로 알려져 끊임없는 관광객들의 발걸음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외피만 미끈하고 단단한 대나무의 본질과 태생의 공격적 성향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쪼개고 보면 속은 텅 비어 있다. 시인묵객들이 칭송하고 감탄해 마지않으나 정작 도구로서는 변변한 쓸모가 없다. 그나마 구부려야 허접한 도구로라도 쓸 수 있다. 비타협은 세상을 죽도 밥도 안 되게 가로막는 갈등의 도화선. 후련하진 않지만 적절한 타협의 지점에서 다시금 세상은 굴러간다. 그렇다고 해 이리 눕고 저리 눕는 갈대 같은 부류는 더 더군다나.
 김삿갓의 시처럼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살자 든지 이방원의 하여가에 정몽주의 답시,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처럼 꼬장꼬장 살자는 말이 아니다.
 여말 죽림칠현을 불살라 죽인 그 아나키스트 사상을 추구하자는 말 또한 아니다. 아마 거기도 잠수함속의 토끼 같은 참을 성 없는 시인이 있었다면 제일 먼저 뛰쳐나왔을 거다.
 세상이야 죽밥간에 우리끼리 히히덕거리며 한 세상 누리며 살다간다 식이라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주체들의 위의(威儀)에 어울린다고 볼 수 없다. 대나무는 대나무, 소나무는 소나무답다. 답다 근처는 가야하는 거 아닌가. 김삿갓의 시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우(愚)는 없어야겠다. 반어의 역설이다. 울분으로 가득 찬 김삿갓의 속내를 뒤집어 봐야한다.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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