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가을 우연히 지인 세 명과 함께 '일에 지친 나에게 여유를 주자'는 얘기 끝에 즉석에서 서울 나들이를 계획해 실행에 옮긴 적이 있다.
 평소에도 여행을 좋아하고 책과 문화에 관심이 많던 우리중 제일 어린 친구는 발 빠르게 입소문이 난 음식점과 북촌 한옥마을을 예약하고 가로수길을 걷는 코스를 기획했다.
 여행은 순조로웠고, 모처럼의 수다와 여유로움은 나에게 자유와 평화를 선사해주었다.
 그중 아직까지 기억의 한 자락을 잡고 있는 것은, 그때의 서울 여행 중 우연히 눈에 띄어 들어갔던 '헤세와 그림들 :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展 이었다. 대부분 헤세를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등을 펴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시인으로 알고 있지만 그는 반평생을 그림과 함께 했다고 한다.
 헤세는 40대의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지만 죽기 일주일 전까지도 그림을 그렸다는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평화주의자였던 헤세가 전쟁과 가족의 아픔, 출판금지까지 겪는 과정에서 상처와 좌절을 어떻게 치유해 갔는지 그의 그림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림 하나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니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고, 예술은 누군가에게 치유와 행복을 주는 삶의 풍요로운 자양분임을 새삼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생활이 팍팍해질수록 예술을 통한 감동과 치유의 경험을 갖는 것이 중요하며,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내는 내면의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의 마지막 주말을 맞아, 울산 동구에서 예술을 통해 문화적 감성을 가득 채우는 '방어진 아트-페스티벌'이 열린다.
 '방어진, 소리를 그리다'라는 주제로 오는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 동구 슬도 입구의 소리체험관 일원에서 진행되는 이 행사는 방어진항의 역사를 테마로 한 주제전과 배 띄우기 퍼포먼스, 아트체험 등을 통해 예술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제1 주제전에서는 근현대도시 동구의 모습을 담은 '낡은 것의 익숙함과 편안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주제로 조각가 이인행, 인간문화재 천재동, 서양화가 최병화의 작품을 선보이고, 제2 주제전에서는 문화관광도시 동구를 꿈꾸는 '포구에 부는 신바람'이라는 주제로 사진작가 김경상, 서양화가 최정임, 조각가 우성립의 작품을 전시한다.
 특히 눈여겨 볼만한 것은 방어동 출신이면서 방어진초등학교 첫 한국인 교사였고, 울산 최초의 전시회를 기획했던 고 천재동 화백의 작품이다.
 선생의 작품인 토우나 동요화 속에는 일제강점기의 상황에도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모습이 간결하고 재미있게 표현돼 있어 보는 이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세계유네스코 다큐멘터리 작가면서 교황 사진작가로 더 잘 알려진 김경상 작가의 사진들은 70년대 어촌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성끝마을과 울산의 비경인 슬도의 아름다움과 방어진 골목의 소박한 정겨움이 녹아 있다.
 100여년 전에는 풍부한 어족자원으로 전국 어획량의 13%를 책임지던 대표적인 어항이었다가 1929년 조선 최초의 조선소가 설립되면서 세계 글로벌 조선산업의 모태가 됐던 방어진항.
 이제는 100년의 역사속에 숨겨져 있던 색다른 이야기들이 방어진 아트 페스티벌을 통해 재조명 될 것으로 기대된다.
 10월의 마지막 주말엔 바다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슬도 소리체험관에서 도슨트가 진행하는 작품 설명을 들으며 작가와 교감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최근 지진과 태풍으로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는 요즘. 일상에서의 지친 심신을 깊어가는 가을 방어진 끝자락 슬도에서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