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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소를 하고 싶은데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럴 땐 손님을 초대한다. 집에 손님이 오니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바닥을 쓸고 먼지를 털게 된다. 내 생각이 아니다. 20여 년 전인가, '리더스 다이제스트'란 잡지에서 읽은 내용이다. 그 글의 제목이 '울타리 너머로 모자를 던져라' 였던 걸로 기억된다. 울타리 안에 머물던 사람은 모자를 줍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가게 된다는 것. 계획만 세우고 행동이 따르지 않을 때, 나태해진 자신을 추스르고 싶을 때, 내면의 열정을 깨우고 동기유발이 필요할 때의 비책으로 소개된 글이었다.

 무언가 해치워야할 일이 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나도 종종 이 방법을 사용하곤 한다. 그 중 하나가 내가 할 일이나 계획을 여러 사람 앞에 공개하고 다짐하는 일이다. 일방적이지만 일종의 약속인 셈인데, 사람들의 이목을 생각해서라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게 되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시도하는 것보다 결과가 나은 편이다. 물론 이 방법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한 경우부터 말해야겠다. 나는 커피를 많이 마시는 편이다. 전에는 보통 하루에 네댓 잔, 많을 때는 예닐곱 잔까지 마시곤 했다. 뭐 대단한 커피 애호가라서 맛과 향을 따지고 음미하는 수준이 아니라, 믹스 커피든 블랙이든 가리지 않고 마시는 카페인 중독자였던 셈인데, 오랜 시간 위에 커피를 들이붓다 보니 탈이 나고 말았다. 속이 쓰려 새벽에 잠이 깨는 일이 잦아지자 커피를 끊기로 다짐했는데,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모자를 울타리 너머로 던지기로 했다, 그러니까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절대 커피를 마시지 않겠노라고 선언을 한 것이다. 그리고 찬장에 쌓아둔 차 봉지를 풀고 다기를 꺼내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처음의 매서운 결심은 무뎌지고 결국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 지인이 여행지에서 사온 색다른 커피 한 잔에 2년 가까이 끊었던 커피를 다시 마시게 되었다. 이제는 하루 석 잔을 넘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이지만, 어쨌든 여러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모자를 주워오지는 못한 셈이다.

 반면, 커피의 경우처럼 언제 태세가 바뀔지는 모르지만 그럭저럭 지켜지는 게 있는데 바로 계단 오르기 운동이다. 아, 운동만큼 많이 시도하고 중단하곤 했던 일이 또 있을까. 뒷산 오르기, 훌라후프, 줄넘기 등 여러 가지 운동을 시도해보았지만 한 달을 넘긴 적이 없다. 그래서 최대한 단순하고 힘들지 않은 것으로 택한 게 바로 계단 오르기이다. 이것도 처음엔 쉽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와 무산을 반복하다 내린 결론은, 어쨌든 계단 아래에 내려가 있어야 올라올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그 계단 내려가기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결국 남편의 출근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모자를 주우러 울타리 밖으로 나가듯, 일단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아침에 아파트 입구 현관까지 나가서 배웅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몸을 돌려 계단을 오른다. 올 3월부터 시작한 일이니 이제 8개월이 된다. 성공이라 자축하긴 이르지만, 마의 한 달은 넘긴 셈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위 두 사례는 조건이 다르다. 커피를 끊는 일은 무언가 하던 일을 중단하는 것이고, 계단 오르기는 안하던 일을 추가로 하는 것이다. 나는 하던 일을 하지 않는 게 더 어려웠다. 아니, 나 뿐 아니라 대부분이 그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무언가를 시도하는 일, 예컨대 외국어를 새로 배우거나, 운동을 하거나, 자격증 공부, 혹은 독서를 시작하는 일은 하다가 중단하더라도 조금만 미끄러진다. 아주 푹 쉬지 않는 다음에야 앞에서 해온 이력이 있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시작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차츰 할 맛이라는 것도 생기게 된다. 하지만 하던 일을 하지 않기, 그러니까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은 훨씬 더 힘이 든다. 다시 손을 대는 순간 주루룩 미끄러져 원위치로 돌아가 버린다. 2년이나 커피를 참았지만 결국 한 순간에 다시 마시게 된 것처럼. 그러니 담배나 술, 게임, 심지어 마약이나 도박 등을 끊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결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모자를 울타리에 던질 때, 나처럼 단순히 외부에 알리는 차원을 넘어 무언가 강력한 힘과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 그 힘 가운데 하나는 주변의 협조이다. 먼 길을 쉽게 가는 방법은 좋은 동반자와 가는 것이라고 한다. 가족이나 지인의 협조는 그런 좋은 동반자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좋지 않은 습관을 떨쳐낸다는 것은 그 사람의 내부에 강인한 의지와 열망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 무엇보다 아낌없이 박수를 쳐줄 일이다.

 안 하기든 더 하기든, 어쨌든 모자 던지기를 시도 하는 게 낫다. 아예 아무 것도 안한다면 울타리 안에 갇혀 그 안의 세계만 보게 된다.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라도 울타리를 나가볼 필요가 있다. 누가 알겠는가. 모자를 주우러 밖으로 나갔을 때 모자뿐 아니라 무언가 다른 근사한 것을 만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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