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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비밀은 없다
[김진영의 세상읽기]
2016년 10월 30일 (일) 20:24:50 김진영 cedar@ulsanpress.net
   
 

비선 실세들의 명단이 오르내린다. 극비 귀국을 내부자들이 공모했다며 당장 잡아들여라고 야단이다. 공모했다면 당장 잡아들인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 비선 실세라며 최순실 국정 농단이라 떠들지만 사실은 최순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실체는 대통령이다. 우리가 뽑은 이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국정 농단의 핵심이다.

 우병우 사태 때 허물어지기 시작한 청와대의 시스템이 최순실 관련 문건이 튀어나오면서 완전히 내려앉았다. 회복 불능이다. 책임 총리로 반전을 꾀하든 거국내각으로 민심을 달래든 이 정부의 홀로서기는 앞으로 없다.
 곪으면 터지든 터뜨리든 선택을 해야 한다. 오래된 염증은 몸의 일부가 된다. 처음은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방치하면 고통이 만성화되고 물렁거리던 염증도 딱딱해진다. 견고한 염증이 몸의 일부가 되는 순간부터 염증은 염증이 아니라 몸통의 일부로 자리한다.

 우병우 사태 때 필자는 개가 아니라 개 주인이 문제라고 했다. 미친개가 어떤 짓을 하든 몽둥이 세례를 퍼붓지 않는 주인이라면 개의 미친 짓을 탓할 수 없다.

 오래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불통은 대통령이 인지하지 못한 지병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온 사람에게 보고싶지 않은 것이나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불편하다. 불편한 것을 감수하는 것이 소통이라는 사실은 사전에 나와 있지만 행동하기는 어렵다. 거저 시장이나 돌고 행사장이나 찾아다니는 사이비 보수들도 비슷하다.

 문제는 비밀을 방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삶에서 비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비밀이 지극히 혼자 자위하는 정도여야 털어버리기가 쉽다. 방을 만들고 그 방에 또다른 방과 인테리어를 하기 시작하면 그 비밀은 무거워 진다. 너무나 무거워 더 이상의 증축이 어려워지면 실체는 어디로 가고 비밀이 실체가 되어 세상과 대면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비주의 하나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비련의 주인공으로 현대사의 슬픈 상처로 자리한 영애였기에 뻘판같은 정치판에 그녀는 빛났다. 그녀 옆에만 서면 우중충하거나 더럽혀진 이미지조차 세탁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정치꾼들이 친박을 만들고 그녀를 우상화했다.

 우리는 그녀를 너무나 몰랐다. 1979년 10월26일부터 IMF 직후 1998년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그녀의 모든 것은 온갖 설과 루머의 연속이었다.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사실이다. IMF라는 초유의 사태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낸 아버지의 후광을 더욱 빛나게 했고 복부인 같았던 영부인들의 이미지는 육영수 여사의 그림자를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이미지 정치의 시작이었다. 현장이 없는 정치는 공허하다. 공자가 주유천하를 택했던 것이나 싯타르타가 고행의 시간을 중생과 함께한 것은 현장이 정치의 뿌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현장이 아니라 최태민과 최순실 같은 심령술사에게 영혼을 의탁했다. 비련의 주인공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아는 자는 집요하다. 심령술사가 사람의 영혼을 지배한 사례는 인류사에 흔한 일이다. 불행히도 전두환 시대, 암흑의 대한민국에서 박근혜는 우리에게 잊혀진채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방을 만들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몰락은 비빌의 방을 여는 순간 시작됐다. 사람들은 최순실 따위가 대통령 연설문을 손대고 요직인사에 예산 정책까지 주물렀다고 경악하지만 수려한 문장 전체가 최순실 따위에게서 온전히 만들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 박 대통령의 국정 기둥이었기에 두가지 모두 도매금으로 두들겨 맞고 있지만 이것 역시 최순실 따위의 머리에서 만들어진 코메디 같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옷을 고르고 인테리어를 챙기는 수준으로 시작한 파트너십이 점점 커져 정책과 인사에 손대는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다. 만들어 온 걸 손대고 지적하는 일은 삼류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것이 뒷배까지 버텨주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마디로 창조가 아니라 재미난 간섭이라는 이야기다.

 이미 결딴은 났다.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시간은 지났다. 나라를 걱정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나라걱정은 국민들이 더하고 있다. 해법은 간단하다. 대통령이 책임지면 된다. 자신은 몰랐다는 게 아니라 알고 있었고 내버려뒀다. 물론 시작은 순수했다고 본다. 좀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했다는 고백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책임지면 된다. 복잡한 일이 아니다. 내려놓기가 어려우면 자꾸 복잡하게 된다는 사실만 안다면 해법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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