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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
조희양 아동문학가
2016년 11월 24일 (목) 19:47:07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내가 좋아하는 십일월이다. 좋아하는 달이 몇 월이냐고 잠자고 있는 나한테 물으면 눈도 안 뜨고 대답할 십일월! 나무도 강물도 솔직히 야위어지는 때, 나도 덩달아 정직해져서 좋다. 그동안 나와 함께 했던 즐겁고 슬픈 일들이 보낸 이별편지가 낙엽으로 쌓여, 내 안에 있는 쓸쓸함을 동무하자고 불러내는 십일월.
 낙엽으로 얼굴을 덮고 다니는 것 같은 여자가 있었다. 오래 전 동네 사거리에서 문구점을 하는 여자였다. 마흔두 살이었나 여자의 농염함이 한껏 피어날 때였지만 화장기는커녕 검붉은 얼굴에 얼룩하니 기미가 소복했다.
  새치가 많은 푸석한 머릿결에 눈 코 입이 함량미달인양 가늘고 낮고 작았다. 옷도 남편이 입던 회사 점퍼를 입고 다닐 정도로 꾸미지 않았다. 남편은 대기업 중견간부이고 두 아이는 공부를 아주 잘 했다. 성품도 넓고 시원스러워서 당신 치장하는 일 외에는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그녀였다.
 문구점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는 내가 놀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유아근성이 있는 내가 새로 들어온 문구 중 맘에 드는 것을 놓지 않고,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면 그걸 툭 뜯어서는 내게 주었다. 캐릭터가 예쁜 공책이나 연필, 편지지, 필통 그리고 연예인 엽서와 과자도 있었다.
 그녀는 항상 내게 너그러웠다. 물건만 후한 게 아니라 내가 앞뒤 없는 말로 까불어도 그녀는 웃긴다고 잘 웃었다.
 문구점도 주인도 좋아진 나는 밤에도 고양이처럼 드나들었다. 그녀는 낮밤의 색깔이 달랐다. 자동차는 주차문제도 그렇고 날렵한 오토바이가 제격이라며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휙휙 날아다니던 씩씩한 그녀는 없고, 툭하면 졸고 있었다.
  푸석한 얼굴은 더 검고 주름져 보였다. 남편과 아이들은 벌써 왔지만 살림집으로 갔거나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그녀는 늘 혼자였다.
 그날도 쪼그리고 앉아 편지지를 뒤적였나 공책 캐릭터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나 그녀가 내 등에다 대고 물었다.
 "너, 내 애인할래?"
 느낌이 좀 이상했지만 졸음을 쫓으려고 한 농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틈을 두고 한 말이 아예 날 주저앉혔다.
 "놀랬어? 한번 생각해봐."
 내 반응이 어떨까 보려고 장난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지만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분위기를 어색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이 참, 나는 애인하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야.' 하며 헤, 웃었다.
 그녀는 항상 나더러 철이 없다고 했지만 난 그녀가 애인하자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건장한 남자도 하찮게 볼 정도로 강하고 억척스런 그녀가 그만큼 외롭다는 것을.
 그녀는 가족도 일도 사랑했지만 남몰래 자기만의 격조 높은 삶을 갈구했다. 차림은 남루했지만 세상을 향한 눈은 밝고 정확하고 또 따뜻했다.
  나는 그런 멋진 여자의 애인이 된 것이 뿌듯했다. 안목 높은 그녀에게 선택받으니 나의 격까지 올라간 듯 고마웠다.
 동성끼리 애인은커녕 애인놀이도 제대로 못한 관계였지만,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하였다. 바람을 가르는 자신의 오토바이처럼 거침없는 여자도 외롭다는 것이, 외로움을 뭉쳐 만든 인형 같은 내게 큰 위안이었다.              
 굳이 애인이란 말을 다신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우린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항상 가게엔 내가 좋아할 새로운 문구들이 들어왔고, 그것들이 내 선물인양 신기하고 즐거웠다.
  그녀는 내가 어디에 정신이 팔렸는지 개의치 않고 자신의 꿈과 우울과 적적함을 풀었다.
 한 때의 애인에 대한 추억은 이미 흙이 되어버린 옛날의 낙엽처럼 멀다.
  홀로 깊어질 만큼 깊어진 그녀의 얼굴 같은 낙엽이 쌓이자 애인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든다. 시린 몸이야 열 내는 옷도 많으니 골라 입히면 되지만, 생바람 부는 들판 같은 외로움을 어쩌랴. 그 마음에게 노래도 불러주고 따듯한 빵도 먹여줄 애인, 봄꽃 피는 어느 날, 잊어버릴 거짓말 같은 마음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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