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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독존(唯我獨尊)- 나를 밟고 지나가라
[김진영의 세상읽기]
2016년 12월 04일 (일) 19:06:46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편집이사 겸 국장

거친 세상이다. 주말마다 촛불이 피어나고 앰프에선 높은음자리가 단연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평화를 이야기하고 질서를 외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거칠기 짝이 없다.

거친 언어는 힘이 있어 보인다. 패명이다. 한자로는 개 짖을 '패'자와 밝을 '명'자다. 앞 동네 개가 둥그런 달이 떠오르자 한껏 짖어댄다. 두려움이다. 그 개소리가 뒷동네로 울리면 뒷동네 개들은 달이 떠오르기 전, 앞 동네 개소리에 따라 짖는다. 그 뒤, 또다른 뒷동네까지. 패명은 논리적 사고에 대한 경계다. 본질을 잃어버린 외침, 소문에 휩싸인 인식을 경계하는 묵언이다.

싯다르타는 보리수 아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다. 딱 한마디다. 이 우주 안에서 내가 가장 높고 존귀하다고 대못을 박았다. 싯다르타의 존귀함은 우주와 소통한 깨친 마음자리다.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가 가장 높고 존귀한 게 아니라 진리를 깨친 본성자리에서 보면 성현이나 지금의 자신이나 다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 마음이 가장 높고 존귀하다는 의미였다. 개소리에 싯다르타를 연결한 듯하지만 본성을 모르는 외침은 흩어지기 마련이다.

목소리가 커지고 언어가 거칠어지는 상황은 꼭짓점을 쳐다보기 때문이다. 능선에서 세상을 보면 저만큼 아래로 펼쳐진 만상이 작아 보이기 마련이다. 조금만 더 거친 호흡을 참는다면 정상의 꼭짓점에서 모두를 아래에 둘 수 있다. 한번만 더 외치면 숨어 있던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정상을 밟을 수 있다는 믿음도 있지만 동시에 뒤 따르는 무리의 발자국 때문에 초조해지기도 한다. 그래,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사위를 포효하듯 거친 숨소리를 내질러 정상의 고지를 나홀로 밟고야 말겠다는 조급함이 거친 숨소리를 쏟아낸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이야기다. 문재인은 어떤 라디오에 출연해 유아독존을 외쳤다. "나는 엄연히 (대선) 1번 주자여서 역사가 역행하지 않도록 저지선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 흐름을 뒤집지 못하도록 마지막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다. 새누리당이 다시 집권하려면 반드시 나를 밟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솔직하다. 그는 또 조기 대선과 관련, 현재 기준으로는 자신이 유리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른 인물이 대선에 성공하려면 "결국 문재인을 죽여야 하는 것"이라고 대못을 쳤다. 유아독존이다.

해방직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념의 그물망에 스스로를 가둔 우리 지식인들은 제대로 된 이념투쟁을 겪어보지 못한 채 한국전쟁을 맞았다. 이념의 현실적 대입이나 앞선 경험집단의 실체를 우리식으로 재구성해 보는 이념의 체계화를 거치지 못한 대립은 투쟁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주먹질과 암살, 비난과 야유라는 시정잡배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같은 경험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정치다. 우리 정치판에서 진보세력은 과거 해방전후의 죄익세력이 보여준 선동적이고 투쟁적인 기질에다 30여 년 동안이나 이어진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실전경험까지 쌓았다. 투쟁의 시대는 끝났지만 전투력으로 전신을 무장한 진보는 10년간의 집권신화까지 썼다. 한번 맛본 권력은 중독성이 강하다. 그 중독의 양분을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주말마다 촛불이 모이고 비판적인 보수언론들이 앞을 다투듯 특종 센세이셔널리즘에 열중하고 있다.

입으로 먹고사는 나팔수들은 자신들이 촛불 민심의 총괄 기획을 맡은 듯 운집할 촛불의 숫자를 점지하고 방향까지 예측한다. 팩트보다 소문이 자극적이라는 사실을 배운 방송의 기교를 펼쳐보이며 비아그라부터 거시기 주사까지 잊을만하면 재생과 반복의 버튼을 눌러준다. 이쯤되니 고지가 바로 저기다.

주말마다 촛불을 따라다니는 대선주자들의 얼굴이 벌겋다. 가능한 더 많은 촛불이 자신의 얼굴을 달궈주길 기대하는 눈치다. 그래서 안달이 났다.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4월말 퇴진이라니 당장 끌어내려 불질러도 성이 차지 않을 판에 질서 있는 퇴진이라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3·15 때도, 4월혁명 때도, 6·10 항쟁과 부마사태 때도 검은 교복의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의 행렬이 청와대의 주인을 바꿔놓지 않았나.

바로 지금이 딱 그 시점이다. 때를 놓치면 모두를 잃는다는 강박증이 심장을 불규칙하게 한다. 그러니 촛불 앞에서 문재인은 "가짜 보수 정치세력, 거대한 횃불로 모두 불태워 버리자"고 외친다. 무서운 세상이다. 말 한마디 글 한줄로 횃불에 타들어갈 수 있는 난세다.

유아독존형 인물을 지도자로 둔 국민들은 불편하다. 하늘의 계시로 창업을 하겠다고 나선 무수한 혁명가부터 유신의 유전인자를 버리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 아니면 나라가 무너지고 민족의 미래가 불투명할 수 있다는 외침이 헌법 위에 촛불민심이라는 초법적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아픈 경험을 또 반복해야 할  것같아 섬뜩해지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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