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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젠 12월이다. 마지막 달을 보내면서 하루가 갖는 의미 그것도 오늘이라는 것이 어제와 내일에서 어떤 것인가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읽기 어려운 소설인데 제임스조이스의 '율리시즈'는 하루 동안의 일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써놓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 하루에서의 사건이 평생을 이야기하게 할 정도의 분량으로 집필되어있다.

하루를 잡아라(seize the day) 라는 말이 있다. 내일의 가능성을 믿지 말고 당장 일어나 오늘 할 일을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라고 한다. 또한 카뮈는 시시포스 신화 서문에서 '불멸의 삶을 애써 바라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고 아폴론 축제경기의 축가를 인용하여 말하는데 이도 내일의 삶을 바라지 말고 오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각성하라는 뜻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렇게 하루, 오늘, 내일 이라는 것들은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며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는 결국 그의 인생의 의미를 다르게 만들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지금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또한 미래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과거인 우리의 역사 같은 것은 또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정신과 의사로서 아무래도 과거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과거에 환자가 받은 충격(trauma)으로서 그것이 원인이 되어 무의식적으로 억압되었던 여러 충동적 행동에 대한 이해를 그의 과거를 진지하게 듣다보면 밝혀낼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를 듣게 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 과거란 그냥 과거 사건을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행위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사실은 오늘의 현재 체험으로서 느껴질 때만이 그 과거를 밝힐 수 있는 것이기에 과거란 항상 말하듯 현재의 과거일 때만이 의미 있다.

내일은 또 어떠한가. 우리는 사실은 어떤 결단에서 자신을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에서부터 이해하며 자기 자신에로 다가간다고 할 때의 자신을 이해함은 일차적으로 미래적인 것이다. 결단성을 가지고 가장 자신다운 존재가능으로 자신을 이해함 속에서 자기 자신에로 이렇게 다가감 속에는 하지만 이제껏 자기 자신으로 있었던 '과거'의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이고 이렇게 되돌아옴 속에서야 앞서 달려간 존재가능을 장악(seize)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이것을 시간을 시간화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닌가.

과거는 그렇게 다시 가져옴으로 반복되고 있건만 그렇게 되돌아오는 곳은 앞서 달려간 장악된 존재가능으로 다시 가져옴이다. 하지만 보통 우리는 오늘을 살면서 대개는 사물들 곁에 머물러 있으며, 그 자체 속에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어, 결국 과거는 망각이 되고 미래는 막 도래하고 있는 것에 대한 기대함으로 되어버려, 그저 오늘의 지금에 머물게 된다.

이런 오늘의 지금을 순간이라고 부른다. 그 순간이라는 것은 하지만 지금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순간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의 결단에서 비전을 보는 것이기에 과거로 되돌아올 장악된 가능성을 붙잡는 순간이다. 오늘을 잡으라는 그런 순간이어야 할 것이다. 카뮈의 그 가능의 영역을 탕진하라는 순간도 역시 빛나는 비전의 오늘을 이야기함이 아닌가.

순간은 그냥 지나가는 현재가 아니다. 근원에서의 시간인 것인데 잘못 이해되고 있고 더욱이 영어에서의 순간(instant)은 인스턴트식품을 대하는 것처럼 즉각적인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뿌리 같은 순간이라는 시간이 마치도 사물처럼 취급이 되면서 오늘이 그렇게 물리적인 시간 속에서 사라지고 12월도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어떤 비전이나 감동을 주기에는 즉물적인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정치도 그렇고 문화까지도 혹 순간순간을 잊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리적인 시간은 가는데 역사는 가지 않는 시간 같이 가고 있다.

이런 마지막 달 12월을 보내면서 생각나는 환자가 있다. 기분장애를 앓던 여성분인데 조증으로 들떠서 잠도 안주무시고 밤새 병동을 돌아다니시다가 그 증상이 주춤하여 이젠 좀 가라앉을 시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국가를 위하여 몸을 바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그 들떠 올랐던 보람 같은 기분이 이젠 떨어져가는 바닥 같은 곳에서 조금은 슬픈 어조로 말씀하시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치료자의 기분도 조금 가라앉고 있었다.

그 망상이 아무리 현실 세계에 맞는 것은 아니라 해도 그는 그 기분으로 한껏 부풀어 올랐었다. 그 부풀어 올랐던 순간이 그의 미래의 존재가능과 기대로 돌아옴에서의 반복에서 풍선의 공기가 빠지듯 뒷받침 될 수 없었던 순간의 비전인 것이었는데, 다른 측면에서는 우리의 사회가 살아있는 신화(神話)같은 것으로 그 기분과 연결이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도 하면서 우리 사회의 오늘의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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