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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되는 새해 계획
2016년 12월 29일 (목) 18:51:48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해마다 그랬듯이 올 연초에도 내 인생의 발전을 위해 소박하면서도 근사한 계획을 세웠다. '부지런해지기'였다. 천성이 게으른 내가 해마다 가지는 간절한 바람과 계획이 '부지런해지기'다. 일손이 느린 데다 소심해서 일에 진척이 없는 편이다.

혼자서는 나름대로 애를 쓰는 데도 주위 사람들에 비해 안쓰러울 정도로 성과가 없다. 우연히 점집에서 점을 봤는데 내 팔자에 게으르다고 나올 정도였다.

내 천성이 어린 아이와 같다고 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달래도 안 하는 아이 성질이다 보니 남이 보기엔 게으르게 보인단다. 그 점괴는 게으른 버릇에 대한 자책의 누명을 벗겨주는 것 같아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난 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딱히 반짝거리지 않는 삶이 게으름 탓인 것 같아서 부지런해지기만 하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꼭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먼저 부지런하기 위해서 꼭 챙겨야 할 부록 같은 일이 있었다. 그건 약속 지키기였다. 누군가 만나자고 하면 거절을 못해서 그러자고 해놓고 곧 후회하는 일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기분 안 나쁘게 약속을 취소할까 고민하는 일이 예사였다. 또 설령 약속을 해도 약속 시간을 안 지키기로 유명한 나였다. 남편과 맞선을 보는 자리에도 2시간 가까이 늦게 나갔으니 뭐라 더한 말이 필요할까. 연세 많은 분들과의 약속시간도 예사로 늦었고 중요한 자리에도 꼭 지각을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과 그 일로 마음 상한 적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건 내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고치기를 바라는 그들의 자비로운 사랑 덕분이다.

올해는 단단히 결심하였다. 부지런해져서 약속을 잘 지키자. 더불어 변화 없는 내 삶도 막 핀 꽃처럼, 이슬 먹은 풀잎 같이 싱싱해지자. 나는 자기 전에 내일 할 일을 스케줄러에 정리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오늘도 분명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 하고 아이 같은 기대로 눈을 반짝였다.

약속이 있는 날은 눈에 더 힘을 주며 즐거운 만남을 상상하였다. 가족 모두가 아침밥을 먹는 시간이 달라서 6시부터 밥상을 차려서 8시가 되어야 나까지 아침식사가 끝이 났다.

늘 부지런하고자 굳게 결심한 내 각오에 딴지를 거는 건 아침밥 먹은 뒤의 포만감에 두어 시간 가까이 수선을 피운 피곤함이 겹친 접전 시간이었다. 눈은 감기고 다리는 저리고 배는 부르고 사람이 환장할 판이었다.

아침을 가볍게 시작하기 위해서 일부러 전날 잠을 일찍 청하기도 했으며, 아침 조리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주일에 밑반찬 만드는 날을 따로 정해 몰아 요리하기도 하였다. 정신이 번쩍 들라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있기도 하였다. 그래도 안 되는 날은 노력하는 자신에게 당근을 준답시고 짐짓 모른 체 했다. 그런 날은 오전에 끝내야 할 일이 해가 질 무렵에나 끝이 났다. 무엇보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그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서였다.

사람들과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하고 나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그들이 있어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내가 꿋꿋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아서 그들 몰래 감사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일부러 혼자서 그런 시간을 가질 정도로 영혼이 가난한 나는 사람들의 은혜를 입고 산다.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은 했지만 절반 정도밖에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 해도 '부지런해져서 약속 잘 지키기'가 새해 첫 계획이다.
 

점쟁이가 쳐 준 점에도 나올 정도로 게으른 내가 부지런해지려고 애를 쓴다는 건 말 그대로 천성을 바꾸려는 거다. 옛말에 천성이 바뀌면 죽는다고 할 정도로 타고난 성향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다. 지천명을 넘어 천성을 바꾸기 위해 목숨까지 건 거라고 흰소리를 해본다. 무던히 기다려 주고 품어주는 따듯한 둥지 같은 사람들은 그 흰소리마저 노래로 들어줄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내년에도 계속 노력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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