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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아!" "양반이라니, 얻다 대고 양반이야?" 흔히 듣는 이 대거리에서 '양반'이란 말은 조선시대 지배계급이었던 그런 양반이 아니다. 낮춰보거나 경멸하는 뜻이 담긴 말이다.

 표변(豹變)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언행이나 태도 등이 돌변해 갑자기 딴사람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소신이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저급한 태도를 비난하는 뜻으로 쓰이지만 원래는 표범이 털갈이를 하면서 아름답게 변신하는 긍정적인 뜻이었다. 수양을 통해 본받고 싶은 인격체가 된 군자의 모습에 비유했다.

 '창조경제'는 대기업 팔목 비틀기로 '문화융성'은 블랙리스트란 말로 치환될 날도 머지않았다.
 결국 최·박의 언어로 전락해 곧 사라지지 않을까? 버리기엔 얼마나 아까운 단어들인가.

 올해 촛불은 또다른 어의를 가졌다. 민심은 한해의 마지막 날마저 '송박영신'(送朴迎新·박근혜 대통령을 보내고 새해를 맞음) 촛불집회로 보낸다. 1,000만 촛불이 마지막 날, 어둠과 부정을 태울 것이다.

 지난 여름 울산시와 지역언론, 정치인들의 각종 칭송들을 돌아보자. 대통령의 깜짝 휴가 말이다. 관광명소로 급부상할 기회라며 태화강 십리대숲, 신정시장, 대암암공원에 대형 사진을 새긴 기념판을 세우고 "대통령이 추천한 울산 십리대숲"으로 놀러오라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울산시의회는 박비어천가까지 바쳤다.

 "박근혜 대통령님의 발자취 하나하나가 큰 은혜로움"이고 "대통령 덕분에 관광 열풍이 불어 지역에 큰 힘"이 되어 "무더위에도 울산은 관광 열풍이 불어 대통령님의 발자취를 따라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아, 하해와 같은 님의 은혜를 우리가 감히 어떻게 보답하겠느냐는 수준이다.

 결국 과공비례인 것. 불과 석달도 못 버티고 헤프닝으로 끝나버렸다. 전국은 촛불의 행렬이 이어졌고 곳곳의 민심은 '박근혜 흔적 지우기'를 시작했다.
 대왕암공원 입구와 십리대숲의 대통령 사진도 보기 흉하게 훼손되었다.
 신정시장의 상인들도 대통령 흔적을 지우느라 바빴다. 손님들이 하도 욕을 해대니 대통령 흔적을 싹 제거해 버렸다.
 말의 무게를 가벼이 여겼거나 선언의 중대함을 재지 못해서 나온 말들 때문이다.

 민심은 언제나 표변한다. 군자표변이라는 본래 뜻이나 현재의 어의(語義)나 표변은 표변이다.
 그러나 울산시와 중구 동구 시의회는 민심표변을 따르지 않고 있다. 훼손된 기념물 사진이나 간판들을 방치하거나 없애는 것이야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겠지만 '창조경제본부'니 '창조경제기획', '창조경제혁신'이라는 이름이나 명칭, 문화융성이란 미사여구는 여전히 폐기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하반기 조직개편에서 당시 정부 차원에서 강조하던 '창조경제', '창조정책', '문화융성' 바람을 타고 태어난 말들이니 새해에는 좀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양반, 표변 등의 어의(語義)의 변화를 말하는 것은 시간의 교훈을 알자는 것이다. 지나고 보닌 그렇더라는 말이 있다. 성공도 지나간 것이 되고, 실패도 잊혀지더라. 한 평생 다 쓸 수도 없는 재산을 부정하게 끌어 모으며 사회에 수많은 피해를 입힌 자도 있었고, 얼굴에 나타나는 시간의 흔적을 지우느라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최우선의 임무를 방기한 자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시간을 거역했다. 그런 '짓거리'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거역이다.
 2016년, 이렇게 시간을 거역한 자들로 인해 국민들은 혼용무도 속에서 보냈다. 주말을 고스란히 촛불을 지피며 광장에 모였던 900만 명의 시간들을 모두 합쳐보자. 시간 거역자들이 수백 년을 살아도 갚을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1735년 조선 영조 때 섣달그믐 밤. 20대 중반의 안정복은 전광석화처럼 지나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며 어떻게 한 해를 마무리해야 좋을지 고민하였다.

 "지나간 일은 그만이니 내가 다시 어찌할 수가 있겠는가 다만 앞으로라도 잘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所冀 逝者已矣 吾復何爲 來焉可追]"
 이 말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새해 소망이라면 너무 관용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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