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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송은숙 시인
2017년 01월 05일 (목) 20:01:02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뜻밖의 비밀을 알게 되거나 감추고 싶은 일이 드러났을 때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한다. 판도라가 호기심에 못 이겨 금지된 상자를 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자를 열자 상자 속에 들어있던 질병, 시기, 죽음과 같은 온갖 재앙이 쏟아져 나와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이처럼 신화나 전래동화 등에서 일을 그르치는 가장 큰 원인은 호기심이다. 푸쉬케가 호기심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에로스는 푸쉬케 곁을 떠난다. 소돔을 빠져나오던 롯의 아내는 도시에서 들리는 아우성이 궁금해서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으로 변하고 만다. 호기심의 대가치고는 그 벌들이 지나치게 가혹하다. 

 호기심은 왜 이렇게 인간을 비극적 운명으로 이끄는 저주의 화신이 되었을까. 호기심은 새롭고 신기한 것에 대한 궁금증,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새롭고 신기한 것은 미지의 영역이고, 절대자나 지배층의 영역이다. 민중이 아는 것이 많고 똑똑하면 절대적 권력이나 지배력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비밀과 신비, 어둠의 세계는 그대로 남겨두는 게 좋다. 미지의 세계는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 된다. 무언가 알고자 하는 것, 밝히고자 하는 것, 탐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금기시해야할 일이다. 알고자하는 욕구, 즉 호기심이 재앙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통해 호기심을 누르고 체제에 순응하며 타협하는 인간으로 길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호기심으로 인해 인간은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다. 재앙이 쏟아져 나오자 놀란 판도라는 황급히 상자를 닫았는데, 그때 맨 밑바닥에 있던 희망이 상자 속에 남아 자신의 존재를 알린 것이다. 상자 속에 남은 희망은 얼마나 비루한가. 그것은 세상을 마음껏 돌아다니지도, 하고 싶은 일도 하지도, 자신을 밝히 드러내지도 못하고, 오직 상자의 어둠 속에 갇혀 사람들에게 "내가 여기 있어요." 하고 애처롭게 말을 걸 뿐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으로 족하다. 희망이 거창하고 멋들어진 것이라면 호기심을 앗아가기 전에 희망을 먼저 앗아가 버렸을 테니까. 상자는 바닥까지 탈탈 털리고 껍데기만 남았을 테니까. 다행히 비루하지만 희망이 남아서 이 풍진 세상을 견디고 살아가게 한다. 그래서 푸쉬케는 갖은 시련 끝에 에로스를 다시 만나게 되고, 롯의 나머지 식구들은 살아남아 모압과 암몬족의 조상이 된다.

 희망은 지명에도 남아있다. 아프리카의 남단 케이프타운에 있는 '희망봉'은 원래 '폭풍의 곶'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1488년, 맨 처음 아프리카 남단을 탐험한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그곳에서 폭풍을 만나 사투를 벌이다 결국 항해를 포기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10년 뒤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는, 리스본을 출발하여 인도로 가는 중 폭풍을 만나 고생을 하다 이곳에 상륙하여 목숨을 건진 뒤 '폭풍의 곶' 대신 '희망봉'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유럽과 인도를 잇는 희망의 새 항로가 개척된 것이다.

 원래 탐험은 새로운 곳,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 호기심이 희망의 등불을 밝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아직 호기심이 살아있는 나이, 미래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가 큰 나이대야말로 희망도 크고, 희망을 이루려고 노력도 많이 하게 된다. 개인뿐 아니라, 세대가 그러하고, 시대가 그러하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우리는 그러한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요즘 나라 도처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상자 속에 상자가, 그 상자 속에 또 다른 상자가 들어있는 기묘한 모양새이다.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오리무중의 답답함도 있다.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은 희망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믿는 그 순간 우리에게 말을 걸기 때문이다. 알고 싶어 하고 진실을 밝히고 싶어 하는 호기심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단지 가십거리가 아닌,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욕구가 담긴 호기심,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가보자는 궁금증과 함께.

 그래서 태생이 비관적인 나도 이제는 희망에 대해 이렇게 쓴다. "희망이 있다면 저런 모양이겠다/ 작고 검고 단단한 것/ 눈물처럼 둥근 것//스발바르제도 스피츠베르겐 섬엔/ 지구 최후의 날에 대비한/  종자보관소가 있다는데/ 납으로 된 서랍 칸칸마다/ 희망 하나씩 잠들어 있다는데/ 노아의 방주에서 아득히 흘러온 지금/ 우리의 희망은 식물성이다/ 태초의 생명체가 바다를 떠나 자리 잡은/ 데본기와 석탄기 원시의 숲/ 켜켜이 내려 쌓인 부엽토다/ 고요히 대지의 틈으로 파고들어/ 땅 속 깊은 곳에서 손을 잡는 저 뿌리들// 희망이 있다면/ 오후의 산책길에서 만나/ 바지 끝을 꼬옥 잡고 있는/ 도꼬마리 푸른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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