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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서의 삶
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17년 01월 31일 (화) 19:30:34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곧 설인데 텔레비전에서는 ICBM을 언제든 발사할 수 있다고 하는 북한 관리의 말이 방송되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가 멕시코 장벽을 세우기 위한 행동에 들어갔다고 하는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세계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라 안에서는 여전히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탄핵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도 설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을 것이고 필자는 설 다음에 수요일에 실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인데 지금 이글을 쓰는 것이지만 마음은 설을 앞질러가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 입원되어 있는 환자분들은 설이라고 외박을 나가도록 계획되어 있는 분들이 있으며 그중 필자의 알코올 관련 한 환자분은 3박4일의 외박이 있을 예정이다. 이젠 연세가 많으시고 몸이 많이 약해져 있음에도 술에 중독되어 있어 술을 끊어야겠다는 필요성이라든가 본인상태에 대한 자각이 또렷하지 못한 점이 있다. 분명 술을 마시면 회복되었던 뇌기능이나 신체적 기능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술에 의한 조절하기 힘든 증상으로 망가지리라는 것이 분명함에도 그것에 대하여 눈감으려고 하는 그의 마음이 어느 때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완고하시다.

 그런 환자분과 신체 건강 상태에 대해 묻다가 마음은 어떠시냐고 물으니 "마음은 집에 가 있다. 다 누구든 직장에 있든 여행에 가 있든 마음은 집에 가 있는 것이 아니냐?" 라고 되물으신다. 병동에 계신 것을 갇혀 있다고 생각하시면서 날아가는 까마귀 참새만도 못한 신세라고 한탄하시곤 했다. 그런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 것이라서 "가족 분들은 이젠 아버님 생각하면서 집에 계신 아버님이 아니라 병원에 계신 아버님을 생각하실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내가 여기에 있으면 마음도 여기에 있어야 하지 않는가요?"라고 여쭈니 그것은 선생님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고 실제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의 말을 하신다.

 필자의 환자분은 사실 자신이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하여 너무 구체적 외적인 면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의 삶의 장소는 어떤 구체적 장소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세계와의 관계에서 얼마만큼 그 세계에 대하여 자신을 열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나의 환자분은 마음을 열지 않고 관심을 가질 수 없었기에 병동을 떠나야하는 장소, 갇혀있는 장소였던 것이 아닌가.

 그렇게 가고 싶은 집이었지만 집에서는 술로 인하여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었고 오히려 병원은 자신의 치유의 장소인 것이므로 이런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보여 졌던 겉모습인 갇혀있는 장소로서의 병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는 일차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삶의 장소에서의 더 다급한 것이 아닌가.
 환자분은 설에 가서 음복주 한잔도 안 마신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집에 가셔서 나를 잃어버리고 오시면 안 됩니다. 술을 자제하셔서 나를 지키시고 돌아오셔야 그 다음 단계로 퇴원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말에 "음복주 한잔 한다고 이성을 잃지는 않는다"라고 받으신다. 하지만 그래도 치료 초기와는 많이 태도가 바뀌어 어쨌든 술을 안 마신다고 하는 약속을 하시고 외박을 하시게 된다.

 그렇게 3박4일의 외박을 보내시기 위하여 내일 출발하게 되어 있다. 내일에 대한 환자분의 자세도 역시 완고하다. 이젠 나이 먹고 갈 곳은 한 곳 뿐이고 죽으면 아무것도 없고 살아있을 때가 삶이며 나가지 못해 여기서 죽더라도 시신은 가져가지 않겠느냐 라고 하신다.

 내일이라는 것이 현재가 연속되어 있는 그냥 아직은 오지 않은 시간인 것은 아니다. 내일은 우리의 미래의 시간으로서 나를 '구성'하는 시간이다. 앞질러가서 그것으로부터 이제껏 존재해오던 바 '기존'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시간이고 그 시간은 내 마음씀(care)의 시간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내 자신 을 얼마나 마음을 열고 있느냐에 따라 실존에로 출현하는 시간인 것이다.

 내가 기어코 열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는 물리적 시간으로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고 내 자신 참외처럼 익는 시간을 맞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그 유한함으로 오히려 이런 근원적 시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죽음이 없으면 내가 사용하는 시간도 없다. 그러면 그냥 연속으로 흐르는 무한한 시간이지 이렇게 추억으로 간직하고 미래로 앞질러가서 현재로 되돌아오는 시간의 시간화도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나는 나의 환자분이 이젠 갈 곳이 한 곳뿐이라는 그 절망으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죽음과 삶의 실존을 느끼시기를 바란다. 나 자신의 실존을 열고서야 나타나는 빛의 영역에서 그의 태어남인 과거가 그의 죽음인 미래 그리고 현재와 동시에 하나로 지금 여기의 장소에 나타나게 되어 지속되는 것이 어쩌면 삶이라는 것을 언뜻 한번 스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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