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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가 속에서도 정제마진 강세로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린 국내 정유업계의 호실적이 '알래스카의 여름' 처럼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불확실한 에너지 정책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의 이행 여부 등  대외 여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 정유산업을 엄격히 관리·규제하는 유럽연합과 일본의 움직임도 예사로이 넘겨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과 S-OIL 등 정유업계는 사상 최대 수익을 실현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매출 39조5,205억원과 영업이익 3조2,28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18.3% 감소했으나 영업이익은 무려 63.1% 증가했다. 창사 이후 최대 영업이익 뿐 아니라 정유업계 최초로 연간 영업이익 3조원 돌파라는 상징성까지 얻게 됐다.
 S-OIL 역시 지난해 16조3,218억원의 매출과 1조6,929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연간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매출은 8.8% 줄었으나 영업이익은 전년의 두 배 수준(107.1% 증가)으로 늘었다.


 정제마진 호조와 유가 회복세 영향이 컸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를 두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환율전쟁을 선포하며 환율 변동성을 확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높은 정유업계는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경우 수익성에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OPEC의 감산 합의도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유가 불안정과 정제마진 하락이 예상돼 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경우 셰일유 생산량이 늘어 오히려 유가가 하락하는 불안정한 상황이 될 수 있으며, 정유사의 실적에 또 다른 영향을 미치는 정제마진이 더 떨어질 수 있다.


 또한, EU(유럽연합)과 일본 등은 친환경 에너지 정책으로 정유산업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하면서 환경규제를 높이고 있는 현실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U는 환경규제를 위해 정제설비에 탈탄소화 공정 도입을 검토하고 있고 일본 정유업계도 수요 감소와 이로 인한 경쟁률 저하로 통합작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일본의 경우, 업계 1위 JX홀딩스-4위 도넨제너럴의 합병과 2위 이데미츠 코산-5위 쇼와쉘의 합병을 승인했다. 고령화 및 친환경차 운행 증가로 석유제품 수요가 둔화세를 보이자, 일본 정부가 과점 우려에도 불구하고 합병을 승인한 것이다.
 유럽과 일본 정유산업의 쇠락은 국내 정유업계에 큰 의미를 주고 있다.
 2020년부터 파리 신기후체제가 가동되고, 일본처럼 고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어 유럽과 일본처럼 금방 석유 수요 감소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흔히들 정유업계의 요즘 호황을 '알래스카의 여름'이라고 부른다. 짧은 호황 뒤 긴 불황이 올 것이라는 의미"라며 "제품 가격이 오르는 것보다 실적에 중요한 것은 그에 뒷받침되는 수요기 때문에 더 긴 시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철길 전 SK이노베이션 부회장도 현재의 정유산업 호황을 알래스카의 여름에 비유하기도 했다. 즉 수요는 정체돼 있는 반면, 공급감소 및 저유가로 인해 일시적 호황이 찾아왔을 뿐이라는 의미다.    김미영기자 myidaho@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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