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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철 부산 해운대구 좌동

전혀 예기치 못한 사태 앞에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우왕좌왕이었다. 경험은 물론 우리에게는 기본적인 지식도 없었다. 지난해 9월 12일 울산 인근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 얘기다. 지난 1978년 국내 지진을 관측한 이래 최대 규모인 5.8의 강진을 경험한 뒤 얼마간 지진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지진이 난지 4개월여가 훌쩍 흘렀지만 아직도 간간히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지진을 그동안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겨왔다. 이웃나라 일본이나 중국에서 잊을만 하면 대규모 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내고 있고, 온 지구촌이 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일반 국민은 물론 정부도 지진에 관한한 문외한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 저변에는 한반도가 지구를 감싸고 있는 여러 지각 판의 경계에서 약 1,000㎞나 안쪽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지대라고 여기고 이를 상식처럼 받아들여왔다.

 때문에 지난해 9.12 경주지진 이전까지만 해도 지진에 대비한 비상메뉴얼조차도 없었고, 그나마 예비된 지진 대비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지진이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처는 명민하지 못해 언론은 물론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재난에 대한 준비와 대처가 부족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지난해 상영되었던 영화 '터널'만 봐도 알 수 있다. 여느 때와 같이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작스럽게 터널이 무너져 안에 갇혀버린 주인공을 구조하는 가운데, 터널 밖에서의 지지부진한 구조작업, 여론분열, 구조 조직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곧 현재 우리가 재난에 대비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700여만 명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다는 것은 그에 대한 공감대가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지에 대한 단적인 예다.

 얘기를 다시 경주 지진 때로 돌리면, 추석 연휴를 앞둔 저녁시간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진이 발생해 경주와 울산을 중심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 와중에 많은 언론과 국민들의 우려는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소로 향했다.
 하지만 우리의 원자력발전소는 자연재해 발생시 심각(A급), 경계(B급), 주의(C급), 관심의 총 4단계로 구성된 대응체계 매뉴얼에 따라, 심각(A급)단계 비상을 발령하고 모든 종사자가 비상 출근해 즉각 대응태세에 돌입했다.

 입사 3년차로 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하는 필자 또한 지진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가족을 먼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이 컸지만, "전직원 발전소로 귀소바람"이라는 메시지가 스마트폰 화면에 보이자 가족들을 뒤로 하고 발전소로 향했다.
 많은 직원들 또한 이미 출근해 시스템과 매뉴얼에 따라 발전소의 안전에 이상은 없는지 밤을 새어가며 살피고 또 살폈다. 이것은 원자력 발전소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직원들의 사명이자 책무이며, 이와 같은 직원들의 노력 덕분에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경주 지진을 통해 보여준 재난 대비 기관의 대처를 살펴보면서, 발전소 안전을 위해 뒤에 두고 온 가족들은 과연 안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황 대응 매뉴얼에 대한 재확인과 보완·수정, 그리고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주기적이고 반복적인 훈련과 교육, 그리고 이를 통해 체계적인 재난 대응 체계가 확립이 된다면, 가족들의 안전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 중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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