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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기옥 울산시의회 의원

요즘 동구의 거리에는 많은 현수막이 걸려있다. 오래 전, 파업으로 최루탄 자욱하던 그런 거리의 모습이 아니다. 대부분의 현수막에는 '분사와 구조조정 반대'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노조의 현수막이 아니다. 동구 주민들의 애타는 목소리이다. 그만큼 동구는 절실하다. 지금 동구는 울고 있다. 대대로 동구에서 살아 온 필자로서는 이런 어려움은 처음 겪는 일이다. 

 예전에 현중주부대학 일을 할 때 왕회장님이 동구에 오신다 하면 모두가 가슴 설레었다. 대한민국 경제계의 거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왕회장님을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
 그 분은 인자하게 우리의 손을 잡아 주셨고 늘 희망과 가능성을 안겨 주셨다. 동구를 새롭게 만들었고 시내에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동구로 몰려들었고 부동산을 비롯한 경기는 좋았다. 모두가 걱정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세계의 지도자들이나 국빈들이 방한 했을 때 대부분 현대중공업을 꼭 방문했을 정도로 동구는 울산의 자랑이었고 대한민국 경제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 동구가 지금 어려움에 처했다. 사정은 거리의 현수막 내용 그대로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가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후 크고 작은 위기와 시련이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마는 지금 동구는 세계 최고의 조선소가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이 떠나고 있다. 사람들이 떠나니 빈집이 늘어나고 경기는 바닥이다. 언론은 모두 '동구의 눈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과연 왕회장님이 계시면 우리에게 무어라고 말할까. 바닷가 모래사장에 조선소를 세우고 중동진출로 석유파동을 이겨낼 돌파구를 만들었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방조제 공사에 유조선 공법을 창안해낸 그 분이 지금의 동구에 와서 우리를 다시 만나면 말이다. 상상해본다.

 위기에 겁먹지 말고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지 말고 정면으로 맞닥뜨려 이겨내라고 우리에게 말하지 않을까. 그러면서 노동자들을 떠나게 하는 희망퇴직, 구조조정이란 단어 자체를 없애라고 하지 않을까.
 대대로 방어진 토박이인 필자는 지난해부터 많은 이웃과 이별하고 있다. 이별은 매번 가슴을 먹먹하게 했고 울먹이는 아픔을 던져주었다. 동울산시장과 일산백사장, 그리고 대왕암공원과 삶의 터전에서 서로 인사하고 부대끼며 정들었던 사람들. 일자리를 잃은 그들은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와 경북으로 제각각 흩어졌다. 나도 그들도 서로 부둥켜 안으며 기약없는 이별에 눈물만 흘렸다.

 세계 최고의 조선소가 자랑이었던 동구는 지금 이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다. '침몰하는 조선업'에 '지역경제는 침울'한 상태에 빠져있다. 처음 듣는 분사와 구조조정을 두고 노사는 대립하고 탈울산은 가속도를 내고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격양가를 부르던 호시절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으면 노사와 동구는 모두 왕회장을 볼 면목이 없다. 노사 모두 최대한 협의하면 현대가 다시 '희망 동구의 등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동구의 한 주민으로서 노사에게 말하고 싶다.

 회사는 27일로 예정된 주주총회를 연기해서라도 노조와 협상을 집중적으로 벌여야 한다. 탈울산을 재고하라. 아무리 노조가 미워도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분사와 구조조정을 계속하면 동구의 눈물은 끝나지 않는다. 노조도 투쟁을 멈추고 협력하고 양보하여 내일의 희망을 함께 만들자. 대선국면에서 조선업 부활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마련하라고 후보들에게 정치적 해결책을 요구하고 정부는 동구경제를 살리기 위한 지원대책을 마련하라고 정책적인 요구를 한목소리로 내어보자.
 그러면서 나는 믿는다. 우리나라 조선업의 기술력은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하니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노사가 협력하고 고통을 분담하고 조금만 더 힘을 보태어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하자. 

 문득문득 그리운 정주영 왕회장님. 그는 오늘의 동구를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게 만들었다. 조선소의 심장인 도크를 세우고 낡은 구두를 꿰매 신으며, 보다 많은 사람이 살아갈 일자리를 만들었다.'원조 흙수저'이면서도 오직 불굴의 도전정신, 반드시 해결책을 제시하는 창조적 발상, 그가 앞장서 일궈낸 역사들이 신화가 되었고 그런 '신화'를 들으며 우리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지금, 모두가 어렵다고만 말한다. 자기만 살려고 몸을 사리고 노사가 서로 책임 떠넘기기와 제 몫 챙기기를 하며 생존을 위해 뭉치는 길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이것이 현재의 동구 분위기이다.

 그러기에 "이봐, 해보긴 했어?"라고 말했던 왕회장님이 요즘 더욱 그리운지 모른다. 제발 노사가 다시 뭉쳐 울산경제를 바로 세우자. 흩어지지 말고 서로 미워하며 삿대질 하지 말고 책임 전가하지 말고 세계 최고의 조선소를 다시 우뚝 세우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해 더 많은 일자리를 울산과 동구에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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