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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지금 정치의 불안정으로 인하여 경제도 나빠지고 일반 서민들의 고통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환경에서 사람이 아닌 모든 것은 부뚜막에 있는 소금처럼 그 자리에 있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을 음식에 넣기만 하면 우리 사회가 잘 되어갈 것인데, 꼬여있는 부분은 사람들이며 그렇게 자기 자신들을 묶고 있는 것이기 때문 사회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필자의 부친이 예전에 자주 하셨던 말인데, 나이가 드니 이렇게 사소한 속담이 그래서 아주 손쉽게 느껴지는 그 일이 사실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음식에 소금을 넣어서 간을 맞춘다는 그 요리의 단계에서 사람들의 실천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철학에서는 우리의 세계라는 것이 자연 총체의 합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세계라는 것은 우리 마음을 열 때 나타나는 것으로써 사실 우리가 하는 요리라는 것이 그냥 식물 동물 광물 따위 재료의 합이 아닐 것이다. 그 요리는 우리가 그 맛에 대한 이해와 정성을 가지고 있어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져 그들 세계에서 의미 있는 요리이다.

 이런 모든 것은 그냥 부뚜막에 있는 소금 같은 식재료를 합한다고 요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그에 대한 감각과 이해 같은 것을 가지고 있고 과거에 그가 한 요리 경험 그리고 솜씨 같은 것이 있어서 요리의 레시피가 이미 있고 그래서 소금을 얼마나 넣고 다른 양념은 얼마나 넣고 하는 것을 선택하면서 매번 어떤 음식이 나오게 될 것인가 하고 가능성을 '기획투사'하는 요컨대 우리들의 그에 대한 '이해' 같은 것이 없다면 아마도 요리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하여서 누구 명장의 설렁탕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완성되는 것이어서 그 독특한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 설렁탕은 부뚜막에 있는 소금을 집어넣는 그 사람의 과거의 레시피 그리고 그것을 현재에서 되살려 보려는 가능성에의 기획투사에 의해서만 의미 있는 그것이 된다. 

 우리가 집어넣는 행동방식은 결코 소금 같은 존재자가 아니다. 그 존재자를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집어넣는 행동의 주체인 인간의 '존재이해' 같은 것이 있어야만 한다. 이런 인간의 존재이해와 행동이 예컨대 인공지능 같은 것으로써 대체될 수 있을까. 아마도 현존재 분석에서는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이다.  구두장이의 경우 구두를 수선하는 그 적당한 행동을 이해하고 그 행동으로써 구두와 관계를 갖는 '세계개현성'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가지지 않고는 세계와의 관계 가능성을 달성하는 그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있음은 소금 같은 무엇이 있음과는 '존재론적'으로 다르다. 인간의 있음은 그냥 그렇게 있음이나 눈앞에 있음이 아니라, 우리의 있음 자체가 떠맡아야 할 과제로 부과되어 있는 있음이다. 우리 세계는 그런 우리의 '존재이행' 같은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단지 부뚜막에 있는 소금으로써는 간이 맞아지지 않는 세계이다.
 우리는 사실 그런 인간의 가능성 보다는 부뚜막에 있는 '현실'의 것들에 오히려 집착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의 인간관계라는 것은 사실은 병속에 있는 물건처럼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인간은 그 서로간의 관계에 의해서 형성되어 가면서 자기실현을 해나가는 존재이다. 하지만 보통은 자기 이익 중심으로 상대를 물건처럼 취급하면서 조작하고 인간을 소외시키는 관계에 몰입하고 있지 않은가.

 물질적인 것을 찾아가는 삶에서는 항상 그런 집착이 우리를 인간 존재로서는 소외시켜서 현존재에서가 아닌 대중적 타락의 삶을 살게 한다고 한다. 이렇게 대중적 타락의 삶을 살아가는 그 집착에서는 가장 가까이 부뚜막에 있는 소금도 결코 우리 세계에서 의미 있는 요리에 집어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부친은 그의 마지막 생에서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속담을 꺼내었는데 열흘 살줄만 알았지 하루 죽을 줄은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 삶은 보통 하루하루 세이브 되면서 물적 대상관계 하면서 대중적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열흘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이 삶이 없으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삶에서 하루 죽을 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우리 인간은 그냥 소금 같은 무엇이 아니고 우리가 되고자 하는 바 누구인 것인데, 그 가능성은 죽음이라는 것을 한 번 느껴봐야 만이 한 번도 소금을 제대로 우리의 요리에 넣으려는 생각을 못해본 그 타성을 깨어 주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그 열흘의 삶은 안락하고 번영된 것 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은 그냥 존재자 집착의 삶이어서, 인간이란 그냥 눈앞의 소금 같은 존재자가 아니고 세계에서 떠맡아야 할 과제로 부과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는 퇴락한 삶이 될 줄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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