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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잠출 편집위원

3월의 첫날 밤, 추위가 물러가더니 하늘이 크게 우는 듯 했다. 우레가 친 것이다. 간간이 빛도 보였다. 우레는 천둥을 말한다. 천동(天動)이 변한 말이다. 옛사람들은 하늘에서 북을 치는 것과 같다고 해서 천고(天敲)라는 표현도 썼다. 우레는 장마철이나 여름철에 많고 봄에는 드물다 보니 봄우레를 신뢰(新雷)라고도 했다.
 이미 입춘은 지났고, 우수는 지난 주 토요일이었고 오는 5일이 경칩이다. 남녘의 봄바람이 하루 수십㎞의 속도로 꽃소식을 안고 성큼성큼 북상 중이다. 머잖아 제비도 찾아 올 건데 우리네 마음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경칩(驚蟄)이란 단어를 해석하자면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벌레나 동물이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말이다. 또 봄 춘(春)자는 본래 풀(艸)과 해(日)와 둔(屯)으로 이뤄졌다. 햇빛을 받고 자라나는 풀을 보고 새가 날아드는 형상이란다.
 봄 춘(春)자 밑에 벌레 두 마리가 있는 것으로 표현하면 '꿈틀거릴 준(蠢)'이다. 불온한 집단들에게 붙이는 준동(蠢動)이라는 말에 쓴다. 준동은 바닥을 느리게 기어 다니는 벌레는 소견이 좁고 사리에 어둡다는것이 본래의 뜻이었다. 무지한 사람들이 숨어서 음흉한 일을 획책한다는 것에 빗대어 쓰는 말이다.

 경칩과 봄 춘, 춘래불사춘, 우레 그리고 준동이란 단어에서 지금 혼동 속에 빠진 우리나라가 떠오른다. 카오스 상태이지만 바로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을 기다린다. 인용여부와 선고일을 점치는 것은 제쳐두고 일단 결과에 모두가 승복해야 한다는 선언들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니 헌재의 결정이 언제, 어떻게 내려지더라도 여든 야든 촛불이든 태극기이든 누구하나 감히 준동하지 말아야 한다. 불복한다면 헌정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헌법 유린이다. 법질서를 외치던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탄핵 인용이든 기각이든 그것은 헌법 정신의 최종 확인이라고 믿는다. 당연히 국민 모두가 그 결정에 승복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부의 준동하는 세력이 있어 걱정이다.
 새삼스럽지만 "헌재 결정에 무조건 승복하라니 우리가 노예냐" 등의 격앙된 주장을 하는 이들이 그런 자들이다. 광장에 나선 시위대는 자신의 뜻과 다른 결정이 나오면 그 결정에 불복하겠다는 분노를 표출할 수는 있다. 그러나 분노를 표출하는 그것으로 끝내야 한다.
 '기각되면 혁명' '탄핵되면 피'라니? 우리가 그럴려고 촛불을 들고 태극기를 흔들었던 것은 아니지 않느냐 말이다.

 답답한 것은 탄핵 후의 충돌이나 편가름이 뻔히 보이는데도 문제를 풀겠다고 나서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치지도자는 이런 상황에 팔 걷고 나서 역할을 하는게 아닐까 싶은데 갈등 조정과 협상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자기 유리한대로 계산하고 광장으로 아스팔트로 시위대를 고무격려하고 따라 다니고 있으니 문제다.
 이미 우리 국민은 모두가 탄핵 사태로 인한 피해자가 되었다. 혼동과 갈등이 넘치고 찢어져 국정 공백이 커졌고 그것으로 이미 큰 피해를 입었다. 국회와 정부는 물론이고 경제계와 기업들은 몸조심만 하고 있으니 일자리 사정이 나아질리가 없다.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니 민심은 사나워지고 배려나 여유가 옅어지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실추된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또 어떠한가. 이게 나라냐하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나라의 공적(公的) 기능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민들은 사분오열되었다. 모두가 대통령과 그 주변 일당의 잘못으로 빚어진 일인데 어찌 국민들만 초조하고 불안하다.
 의견은 달라도 우리는 민주주의와 법치, 헌법을 버릴 수는 없다. 결국 답은 법이다. 탄핵심판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누구나 승복하는 것이 곧 법치이고 민주주의 정신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헌재 판결 이후에 인용이든 기각이든 분노하고 슬퍼하는 국민을 위로하고 공감해 줘야 한다. 하지만 헌법질서 존중이라는 마지막 합의는 깨트리지 말아야 한다.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의 법질서가 흔들려서도 안된다. 헌정질서는 마지막 보루이다. 우리 모두 이에 승복해야 하고 결정 이후는 절차에 따르면 된다. 정치 지도자들이 먼저 나서 탄핵심판 이후를 걱정하고 통합을 위한 고민과 합의를 이뤄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탄핵 이후의 봄! 더 이상 그 누구의 준동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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