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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하다가 야생화를 보았다. 높은 산에는 아직도 잔설이 분분한데 어느새 꽃을 피웠다. 추위에 강하다는 얼레지다. 다소곳이 밀어 올린 자주색 꽃잎이 안쓰러우면서도 더없이 곱다. 한 대에 여러 송이를 피우는 여느 꽃과 달리 한 대궁에 한 송이만 피웠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이 마치 피겨선수가 한쪽 발로 회전하는 모양을 닮았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온 모습이 대견하다. 고산지대에서 피어나는 얼레지, 그의 노력도 만만하지 않다. 작은 씨앗이 땅속에 묻혀 싹을 틔워 세상에 존재를 알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숙성되어야 한다.

 땅속에서 몇 년간을 기다린 뒤에 새순 하나를 달고, 그로부터 부동자세로 2년을 견디어낸다. 그렇게 버티어내다가 장장 6년을 더 지나야만 두 잎이 나온다. 긴 세월에 걸쳐 자리를 잡은 후에야 꽃을 피운다. 그때부터는 해마다 꽃을 피우며 더 깊게 더 넓게 알뿌리를 만들어 나간다. 꽃을 피우기까지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야만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이런 힘든 과정이 있었기에 얼레지는 야생화의 여왕이란 칭호가 붙였는지도 모른다. 이른 봄을 알리는 꽃들은 많다. 복수초, 노루귀, 변산 바람꽃, 앉은부채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런 꽃 중에서 얼레지는 빛이나 자태가 산만하지 않아 눈길을 더 끌어당기는 것 같다.

 끊어질 듯 호리호리한 얼레지의 꽃대가 찬바람을 어떻게 이겨내고 피어났는지 가냘프기까지 하다. 긴 시간 참고 견딘 보상만큼 기품이 엿들었다. 기온이 낮으면 꽃대는 우산을 접어놓은 것 같이 다소곳하다. 겸손하게 있다가 햇볕이 따스하게 비치면 얌전히 핀다. 활짝 핀 꽃잎을 뒤로 확 젖혔다. 바람이 지나가면 꽃대는 흔들리지만 꽃잎은 흐트러지지 않고 단아하다. 여린 듯 보이지만, 자신감이 넘친다. 겉과 달리 내면에는 진취적이고 독립심이 강한 꽃이 아닐까 싶다.

 얼레지의 꽃모양이 여인이 머리를 뒤로 묶어 단정한 모습 같기도 하다. 넓게 핀 꽃잎이 축 처지지 않고 밖으로 감싸는 것은 도전을 꿈꾸고 있는 모양새다. 연자주색 꽃대가 바람결에 흔들리니 피겨 선수처럼 보인다. 공중으로 날아오르다가 가볍게 착지한 다음, 고개를 뒤로 젖히고 몇 회전 이상을 뱅뱅 돌 때의 그 모양과 흡사하다.

 몇 해 전 피겨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나는 단잠을 자다가 첫새벽에 깨어났다.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을 겨우 치뜨고 텔레비전을 지켜보았다. 영락없는 자라눈을 하고 새벽도 아랑곳없이 남편과 나의 눈은 텔레비전에 정지되었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숨을 모았다. 순간 잔잔한 음악이 나오자, 그녀는 선율에 매료되어 연기를 펼쳐 나갔다. 그때야 내 눈은 장님이 개안(開眼)을 하듯 저절로 확 뜨였다. 다른 동작으로 이어질 때마다 내 간이 떨어졌다가 오그라들기를 몇 번이나 했다. 동작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본인도 가진 혼 전부를 쏟고 있지만, 보는 나도 내 속에 든 모든 기를 모아 그녀의 연기에 보태주고 있었다.

 얼레지를 닮은 피겨선수는 많은 사람에게 기쁨의 엔도르핀을 생기게 하는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틀림없다. 잠자던 사람을 깨어나게 하고 맥박을 더 빠르게 뛰도록 만들었다. 창문 너머 불빛들이 촘촘하다. 하늘과 키 재기를 하듯 서 있는 주상복합에도 새벽이 무색하다. 층층이 불빛이 반짝인다.

 얼음판에 핀 여왕 꽃은 오랫동안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차가운 얼음판에서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헤아릴 수도 없이 했을 터, 고통과 싸우며 신념과 끈기로 피워낸 여왕 꽃이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여왕이란 이름을 얻기까지는, 굳은살이 박혀 피가 나고 아물기를 수없이 했을 터. 마치 얼레지가 꽃이 피기까지에는 투박한 두 잎이 검은 얼룩이 지면서까지, 꽃대를 밀어 올릴 수 있도록 자양분을 몇 년이나 저장하지 않았었나. 어둠이 지난 뒤에야 빛이 더 환하게 보이는 것처럼.

 이제껏 나는 훈풍이 불어야 잎이 피고, 온기가 있어야만 꽃이 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잔설이 있어도 얼레지는 피어난다. 어디에 저 강인함이 들었는지, 뾰족한 화살이 없어도 철옹성을 뚫은 저 의연함, 노력이 다져지면 얼음 궁에서도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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