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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최영주 수필가
2017년 04월 06일 (목) 16:36:11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쇼핑몰에서 젊은 부부가 앞서 가고 있다. 청춘의 아이 아빠는 두 살배기 아기를 어깨 위로 쑥 올려 안은 채 아내와 얘기를 나누며 걸어간다. 앙증맞은 모자를 쓰고 따뜻하게 옷을 입은 아기는 아빠의 어깨에 가슴을 대고 뒤에 따라오는 풍경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구경하고 있다. 아기를 향해 손을 흔들며 웃으니 아기도 방긋방긋 답을 해준다. 지금 아기에겐 아빠의 어깨가 세상없이 든든한 천국이리라.

 어릴 적 아버지가 자주 목말을 태워주시던 것이 생각난다.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 목말을 타면 하늘에 훨씬 가까워지던 감동과 키가 작아서 못 보던 새로운 풍경들이 쓰윽 다가와 어린 가슴이 설레던 순간들을 잊을 수 없다. 남편은 손자들한테 목말을 잘 태워주었다. 아파트 마당에서 목말을 태우고 비누방울을 불어 날리게 하면 손자들은 더없이 즐거워했다. 무선조종자동차 같은 값비싼 장난감보다 비교가 되지 않게 좋아했다. 거기엔 단단하고 따뜻한 어깨가 한몫하고 있었다.

 어깨는 침묵으로 많은 표현을 한다. 의기소침해진 사람은 어깨가 처져있고 자신감이 생기면 어깨부터 펴진다. 외로운 사람의 뒷모습은 어깨가 쓸쓸해 보인다. 반듯한 자세의 마무리는 어깨에서 나오고 철없는 깡패의 어깨엔 헛힘이 잔뜩 부풀려져 있다. 

 어깨엔 세상의 짐이 다 얹혀 있다. 가장의 어깨 위엔 가정을 잘 끌어가야 하는 짐이 눌려 있고 사장의 어깨엔 회사경영에 대한 책임이 지워져있다. 취업준비생들은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해야 하는 부담감을 책가방으로 어깨에 메고 다닌다. 짐도 어깨가 진다. 남자들은 무거운 짐을 어깨에 올려 옮긴다. 옛날 부두의 노동자들은 배에서 그 많은 짐을 내리는 일을 어깨로 했다. 걸음을 떼어놓기 힘들 만큼 몸에 부치는 짐을 어깨에 메고 가족의 생계비를 벌었다.  

 어깨는 유일하게 수평적이다. 오로지 수직적인 사람의 체형에서 단지 어깨만이 수평을 이룬다. 어깨는 더 높아지기 위해 위태롭게 발돋움하며 기를 쓰지도 않고 굳이 낮은 데로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다만 세상의 움직임은 형평성에 의거해야 한다는 듯 제 부여받은 그만한 높이에서 균형에 몰입하여 힘을 쏟는다. 

 우리는 어깨와 더불어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안정감을 주는 수평의 바닥에 발을 딛고 어깨쯤의 옆을 돌아보면 가족과 친구가 있고 동료도 있다. 내 곁의 가족과 오순도순 어깨를 비비며 살아간다. 친구들과는 어깨를 겯고 지낸다. 여럿이 한 곳으로 마음이 모아지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쪽을 향해 나아간다. 흥겨울 땐 어깨가 들썩이고 흐느끼면 잔물결이 어깨에 인다. 추위를 느껴도 두 팔로 어깨를 감싼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할 때 애틋하게 다가서서 뜨거운 가슴의 간격을 최대한 좁힌다. 서로 고유하게 간직해온 마음결에 입술을 대며 마침내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어깨부터 꽉 껴안는다. 어깨가 하는 일은 여러모로 다양하다. 오래 입어 목 부분이 늘어난 낡은 티셔츠가 흘러내려 한쪽 어깨가 드러나면 여자는 갑자기 관능적으로 보인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으로 분한 비비안 리는 점심시간에 열리는 바비큐파티에 가면서 어깨를 드러낸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나선다. 사랑하는 애슐리한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이다. 그 시대 문화대로 오후 3시 이후에 입어야 한다고 유모가 강경하게 말리지만 스칼렛은 들은 척도 않는다. 시대가 요구하는 예의 바르고 반듯한 숙녀의 이미지에 흠집이 날까 봐 유모는 애가 탄다. 어깨가 자극적 경계선임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런 요염함은 허름한 셔츠 속에 갈무리 해두고 어깨는 좌절하고 슬픔에 찬 친구 옆에 가만가만 다가앉는다. 서럽게 무너져 내리는 몸과 마음을 여기에 기대라고, 참담하게 쓰러지지 말고 기대어서 눈물을 쏟으라고 조용히 어깨를 내민다. 최선을 다해온 너를 알고 있다고, 명징하게 힘주어 살아온 너인데 앞으로 다 잘될 거라며 어깨는 말없이 곁에서 함께 한다. 김선재의 시 '태양의 서쪽', '지구가 내게 어깨를 기대 저물어갈 때/ 국경의 여인숙은 불을 켜고'를 읽을 때 어쩌자고 눈물이 핑 돌았을까.

 하늘이 쪼개져도 제 어깨에 제 몸을 기댈 수는 없다. 의지할 수 있는 어깨는 타인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아무것도 아니게, 사람들 모두 떠나고 남겨진 회전목마 같은 처지여도 내어줄 어깨가 둘씩이나 있어 제법 괜찮은 일이다. 내 볼품없는 어깨가 누군가에게 첫사랑처럼 다가갈 수 있겠다 싶어 조금 뿌듯해지기도 한다. 내가 노을 길을 갈 때도 어깨는 나와 함께 오래도록 저물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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