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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 비밀친구'는 말을 하지 않는 아이, 에릭이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에릭에게는 멋지고 용감하고 똑똑한 비밀 친구가 있다. 비밀 친구는 에릭이 자기 전에 읽을 책을 골라주고, 무서운 도마뱀을 쫓아 주었다. 에릭은 비밀친구만 있으면 심심하지도 않고 무서울 것도 없었다.


 아동심리학에 따르면 아이들이 가지는 상상 친구(Imaginary Playmate)는 성장하면서 겪는 통과의례라고 한다. 아이의 상상놀이가 잦아지고 어른들로부터 독립되며 자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상상 친구는 사실 정말로 신비하고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세상과 단절하고 자신만의 세계로 파고들게 만드는 것 같지만, 상상 친구를 통해 아이는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모든 것이 서툴고 태어나 겪는 모든 것이 첫 번째 경험이 되는 아이에게 상상 친구는, 타인과 마음을 열고 나누는 법을 익히게 해준다.
 에릭에게 비밀친구는 낯설고 무서운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는 존재였다. 에릭의 마음은 굳게 닫힌 상자와 같았고 깜깜한 상자 안에서 비밀친구와 함께 놀고 이야기하고 잠들었다. 에릭의 닫힌 마음을 표현하듯이, 그림책의 3분의 2는 검고 갑갑한 프레임에 갇혀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릭은 마음 따뜻하고 활발한 소녀 마샤를 만난다. 에릭을 벙어리라 놀리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봐주는 마샤와 함께 에릭은 즐겁게 뛰논다.
 마샤와 노는 사이에는 이상하게도 비밀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비밀친구가 사라진 사실을 깨달은 에릭은 화가 나고 속상해서 마샤가 같이 놀자고 찾아왔지만 가라고 소리를 치고 만다.
 에릭의 마음의 문은 영영 닫히는 걸까. 하지만 마샤가 건넨 진심어린 마음은 에릭에게 용기를 주었다. 에릭은 나무에 걸린 연을 꺼내려고 애쓰는 마샤를 돕기 위해 혼자 힘으로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연을 가져왔다. 이 일을 계기로 에릭과 마샤는 마음을 나누는 진정한 친구가 된다. 검은 상자 안에 갇혀 있던 에릭의 마음도 아름다운 공원처럼 활짝 펼쳐진다.
 에릭은 마샤와 함께 하늘 높이 연을 날리며 비밀친구를 향해 잘가라고 속삭인다.


▲ 권은정 아동문학가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낯설고 힘들다. 마음을 나누다 상처를 받고, 되레 상처를 주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다 큰 어른이지만 마음 속 비밀친구라도 만들어서 복잡한 인간관계를 잠시 멀리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다시 되돌아서 조심스럽게 마음을 건네 본다. 진심을 다해 솔직하게 용기를 낸다면, 마음은 전해지고 더 크고 따듯하게 돌아와 우리를 미소 짓게 할 것임을 알기에. 내 마음을 지켜주었던 비밀친구는 이젠 없지만, 사랑받고 때로는 너덜너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가, 다시 힘을 내어 마음을 주면서 서툴지만 천천히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권은정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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