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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는 정치든 사회집단이든 상대를 공격하는데 유용하다. 지금처럼 대통령 선거가 2주 남짓 남은 기간에 상대후보의 약점을 폭로하고 나서는 일은 더욱 그렇다. 대선 때마다 폭로정치는 꼬리를 물었다. 비열해보이긴 해도 우리의 선거문화에서 폭로는 약효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김대업 사건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돌발변수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이번 대선판에서도 폭로정치가 튀어나왔다. 발단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입이었다. 유 후보는 지난 KBS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를 향해 주적과 북한인권결의안 기권을 놓고 돌직구를 날렸다. 원고없이 진행된 이날 토론회의 하이라이트였다. 돌직구를 바라보다 자신을 향해 날아온 강펀치임을 깨달은 문 후보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주적이 어디냐는 질문에 머뭇거렸고 "대통령이 북한을 주적이라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식의 외교적 수사로 마무리하려고 했다.

 대통령이 된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공세에 "유승민 후보도 대통령이 되면 그렇게 답해야 할 것"이라고 주춤거렸지만 돌직구의 위력은 상당해 보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유승민 후보의 돌직구는 작심한 듯 문재인 후보를 겨냥했다. 북한인권결의안 기권에 대한 북한 사전 문의에 대한 입장이었다. 지난해 10월 송민순 전 외교장관이 회고록을 발간하면서 시작된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사전내통 의혹은 최순실 사건으로 묻혀버렸지만 대선이 임박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송 전 장관은 당시 회고록을 통해 우리 정부가 기권을 결정하기 전 이 문제에 대해 북한에 물어본 뒤 결정했다고 폭로했다. 문 후보는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문 후보는 당시만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고 그때 회의 참석자들은 그런 사실을 부인했다.

 문제는 말이 달라진 점이다. TV토론에서 문 후보는 "국정원 해외 정보망을 통해 북한 반응을 판단해 봤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에 반응을 직접 타진한 건 아니란 주장을 조금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했다. 하지만 이부분이 바로 문 후보의 급소가 되고 있는 모양새다. 송 전 장관은 토론 직후 문 후보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며 구체적인 정황을 담은 문건을 폭로했다. 이 문건엔 "남측이 반공화국 세력들의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북남 선언에 대한 공공연한 위반으로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등의 북한 입장이 들어 있다. 다른 대선 후보들과 송 전 장관은 "문 후보가 거짓말했다"고 일제히 공격에 나섰고 문 후보측은 비열한 북풍공작, 종북몰이라며 부인하고 나선 상황이다.

 안보를 이번 대선판의 타깃으로 삼은 자유한국당은 때를 만난 듯 이번 사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태세다. 홍준표 후보측은 돼지흥분제로 홍 후보가 천박한 인물로 낙인찍힐 위기를 문 후보의 '북한내통 국기문란' 사건으로 돌파하려는 호기로 본듯하다. 자유한국당 측은 이번 일을 아예 특별검사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 등으로 정면 승부를 걸 생각이다.

 어쩌다보니 돼지흥분제가 북한내통과 동급이 된 셈이다. 대한민국 대선판은 구태청산과 새로운 정치문화를 화두로 시작됐지만 김정은의 핵실험 집착증에 트럼프와 시진핑의 음흉한 뒷거래까지 벌어지는 통에 안보가 핵심 이슈가 되버렸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유승민의 돌직구다. 적절한 답변이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상황은 자꾸 복잡해지고 있다. 주적의 경우 한발짝 물러서 생각해보면 답이 뻔하다. 북한은 대한민국 공동의 적이자 총뿌리를 겨눈 상대다. 이를두고 주적운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답을 종북몰이에 이용하려는 꼼수다. 내가 생각하는 주적과 당신이 생각하는 주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면 그 뿐이다.

 인권결의안 기권은 당시 남북한 정권의 소통에 대한 설명이면 충분했다. 지금처럼 긴장상황이 아닌 교류의 시대에 여러 가지 현안을 남북은 소통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외교적 판단이었다고 설명하면 그 뿐이다. 내통이나 사전 허락이니 하는 따위는 당시 남북한의 정세를 도외시한 종북몰이의 흠집잡기 아니냐고 역공으로 대응하면 당당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을 바꾸고 돌려 말하고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니 본질을 의심하게 된다. 당당하면 넘어갈 일인 것을 모호해지니 정말 북한 편을 드는 사람인가 싶은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돌이켜보면 폭로정치로 득을 본 쪽은 지금의 민주당이다. 바로 김대업 사건이다. 지난 2002년 대선은 무차별적 허위사실의 폭로행위가 난무했고 김대업 병풍공작 사건은 대선판을 뒤엎었다.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를 은폐하기 위한 대책회의를 하였다"는 김대업의 폭로를 대형 사건으로 부풀려 대세론에 들뜬 이회창 후보는 하루 아침에 치명상을 입었다. 당시 민주당은 김대업의 폭로에 대해 사실관계를 떠나 정치쟁점화에 열을 올렸다. 김대업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면서 그의 주장에 힘을 싣고 유권자들에게 집단최면을 건 쪽이 누구인지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폭로의 이득은 달콤했지만 이제 그 폭로가 부메랑이 되고 있는 현실은 마냥 달콤할 수없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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