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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것들
                                                                    
반숙현
 
옆집에 살던 이가 이사를 했다
사람들만 이사를 했나
대문 밖 외등 아래 버리고 간 살림살이들
제조연도가 90년대인 세탁기며 텔레비전 가습기 등
한 때는 주인의 일상을 편하게 책임지는 것들
 
그중 세탁기는 버려졌단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뚜껑도 떨어트린 채 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십 년 넘게 삶의 흔적들을 되새김했을
저 커다란 입
 
누군가에게 버림받았다는 건 세탁기나 사람이나
얼마나 놀랍고 눈물 나는 일인가
희미한 외등 아래 소리치듯 벌린 입에
땅 위에 뒹굴던 뚜껑을 얹어 주었다
 
낡고 늙어지면 나도 이렇게 버림받는 것이 아닐까
여태껏 다물고 있던 내 입이 벌어 진다
세탁기가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 서순옥 시인

 

가끔씩 나의 아둔한 머리를 감동케 하여 보는 있는 이 마음에 단비를 뿌려주는 사람.
 반시인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봄날의 단비를 맞은 나무 같은 생동감으로 넘쳐나 나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심감과 용기를 받곤 했었다.

 

 


 2002년에 인터넷 문학 사이트에서 그녀의 시를 접하고 그녀와 메일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교감을 나눴다 좋은 시를 접하면 시를 쓴 사람까지 알고픈 게 욕심이라면 욕심이겠지만 반숙현의 시를 너무나 친숙하게 가슴에 와닿는 것들이 너무 많아 그런 시인과 친분을 나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몇 년간을 그렇게 알고 지내다가 어쩌다보니 서로 연락이 뜸해 졌고 아주 가끔은 그녀를 떠올리곤 했지만 언제라도 연락하면 바위처럼 늘 그 자리에 있을 꺼라 믿음과 언제라도 만나서 밥이라도 한 끼 해야겠다는 생각만 늘 가지곤 했었다 그동안 좋은 시를 많이 쓰고 있었을 거라 믿고 지난달부터 그녀를 찾아 메일을 보내고 인터넷을 다 뒤졌다 예전에 자주 들렀던 문학홈페이지도 열어보고 이리저리 찾아왔는데 그녀의 어디에도 없었다. 여러 날을 인터넷을 뒤지다가 겨우 찾아 낸 그녀의 근황. 이미 오랜 전에 저 하늘의 별이 되어버렸다는 내용뿐이다. 어안이 벙벙하여 나도 저 세탁기처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밀물처럼 확 밀려왔다가 썰물로 다 빠져나가버린 그 빈자리에  지울 수 없는 허무감만 감돌뿐이다.
 그녀는 신인상과 문학상도 받았지만 정확한 기록이 없어 생략하고 그녀의 시 한편을 더 소개할까한다.


 "누구 든 떠날 때는" 
 /낙엽을 태운다/낙엽이 타는데/내 눈엔 물기가 고인다.//낙엽이든/사람이든/보내는 길엔/ 눈물이 나나보다.//사그라져 가는 불씨에 /한 줌의 낙엽을 얹는다.//덜 마른 낙엽에선 /무성한 연기가 난다//훗날 내 육신 보낼 때도/젖은 낙엽 태우듯/연기만 무성하겠지. 서순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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