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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3일이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공식 명칭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199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정해져 책의 중요성과 보급, 그리고 책 읽기를 권장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 하겠다. 더군다나 이날은 세계적인 대문호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책의 날'을 기념이라도 하듯이 다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었다. 바로 독일의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1944~ )의 장편소설로 1995년에 발표한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다. 책은 나오자마자 문제작으로 회자되어, 미국에서는 독일어권 소설로는 처음으로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현대 독일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성공한 소설로 평가되었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은 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보았다. 2009년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자마자 영화를 보러갔다. 그리고나서 바로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당시 이 작품 제목을 패러디해서 '책을 읽어 주는 남자'가 매스컴에서도 유행처럼 퍼져나가 여기저기서 책을 읽어주는 남자의 모습이 비추어지곤 했다. 그러나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의 내용은 그렇게 낭만적이거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아프고 안타깝고, 처절하기까지 하다.

 책 내용보다는 책 제목이 주는 강한 임팩트로 요즈음에는 '책 읽어주는 아빠', '책 읽어주는 엄마'가 아이들의 머리를 좋게 한다는 홍보와 함께 '책 읽기'를 권장하고 있다. 나 역시 딸아이가 갓난아이 때부터 자장가 대신에 책을 읽어 주었다. 밤마다 책을 읽어 준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된다.

 그럼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의 줄거리를 살펴보도록 하자.
 '내 나이 열다섯이던 해에 나는 간염에 결렸다'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회상형식으로 되어 있다. 열다섯살 소년 미하엘은 길을 가던 중에 심한 구토를 일으키고, 이를 본 서른여섯의 여인 한나의 도움을 받게 된다. 미하엘에게 첫사랑인 시작된 것이다. 이들의 은밀한 만남은 계속되었고, 한나는 미하엘과 관계를 갖기 전에는 항상 그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했다. 소설 제목이 '책 읽어주는 남자'인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미하엘이 한나를 위해 책을 읽어 주는 장면에서 붙여진 것이다.

 한나가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부탁한 것은 그녀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눈치 채지 못한 미하엘은 한나를 만날 때마다 책을 읽어 주었고, 그러는 사이에 읽은 책의 수는 늘어만 갔다. 그런데 한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어느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그리고 나서 8년 후, 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된 미하엘은 법정에서 나치 전범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한나를 만나게 된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미하엘은 한나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나의 무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고, 그 책임을 한나는 고스란히 받고자 했다. 한나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싫어서 범죄자임을 인정하고 끝내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미하엘 역시 한나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죄가 경감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에 알리지 않는다.

 이후 미하엘은 법학자로서 살아가며 한나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한나를 위해 새로운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카세트테이프에 책을 낭독 녹음해서 감옥에 있는 한나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한나는 이것을 통해 평생 자신을 옭아맨 문맹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한나에게 있어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18년간의 수감 생활 동안 미하엘과 한나는 오로지 책을 통해 소통했고, 그 소통의 속에 한나는 드디어 출소를 하게 된다. 바깥세상에서 미하엘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면되던 날 한나는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을 한다.

 과감히 한나를 죽음으로 몰아간 작가의 선택이 오히려 현실감 있게 와 닿았다. '세계 책의 날'을 생각하면서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읽기를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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