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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국제정치의 흥정거리가 됐다. 가장 성공적인 취임 100일이라며 자화자찬에 빠진 트럼프는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하면 시진핑은 기분이 나쁠 것이라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중국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는 모습이다. 트럼프는 취임 100일을 맞아 미 CBS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가 핵실험을 하면 나는 기쁘지(happy)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또 말하건대 매우 존경받는 중국 주석(시진핑)도 역시 기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 문제에서 중국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인터뷰의 대부분을 북한문제에 할애한 이날 트럼프의 외교적 술수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시진핑 주석을 한껏 치켜세우면서 시 주석이 "역시 그(김정은)에게 압박을 계속 넣고 있다고 믿는다"고도 했다.

 간헐적으로 화면에 나타나는 트럼프의 최근 행보는 북핵 문제를 마치 국정의 최우선으로 둔 사람같아 보인다. 툭하면 시진핑을 띄우고 존경과 찬사를 아끼지 않다가 '환율조작국' 문제가 나오면 "그(시진핑)가 이만큼 노력하는데 우리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딱 사업가 체질이다. 외교를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치밀한 자국이익 우선의 사례로 보인다. 얄미운 쪽은 아베다. 부인이 연루된 사학 비리로 정치적 명운까지 걸었던 아베는 북핵 문제를 연일 국제적 이슈로 만드는 트럼프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간간히 직통핫라인으로 전화도 걸어오고 일본의 역할론을 부추기는 대목은 그저 감읍할 따름이다. 전화를 받으면 곧장 기자회견을 자청해 일본의 역할론과 일본 자위대의 무장을 강조하며 분열된 여론을 다잡는다. 이쯤되다 보니 곤두박질하던 지지율이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 고무적이다.

 시진핑은 영락없이 트럼프에게 이용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실리를 더 많이 챙겼다. 남중국해의 갈등이 우선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환율조작 어쩌구하는 미국의 강경대응이 수그러들었다. 접경지대에 독가스 훈련을 실시하고 병력을 이동하는 제스처로 북한을 압박한다는 시늉을 내주면 곧바로 트럼프의 찬사가 쏟아진다.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연일 북한에 대한 경고를 쏟아내면서 마지막 문장은 미국과 일본을 향해 경거망동을 하지 말라는 준엄한 한마디도 잊지 않는다. 대국의 체면은 한껏 살리면서 실리를 잊지 않고 챙기겠다는 계산이다. 미국과 일본을 향해 할만큼 하고 있다고 보여주면서도 러시아와는 외교부 수장끼리 자리를 하고 미국식 강경대응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는 할 것은 다하는 모양새다.

 사정이 이런 판에 북핵 위기의 직접적인 피해지역인 한반도는 참 우스운 모양이 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폐쇄된 사회의 특성을 살려 내부 단속용 공포탄을 툭하면 쏘아올리며 평양발 공중파로 체제강화와 대미 선전포고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어차피 알아줄 것이라 계산한 것이 아니니 목청만 높이면 그만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돌발변수에 정치는 실종됐고 대응방법도 갈지자 행보다. 사드 하나 들여놓는 것으로도 된다 안된다로 분열만 계속하는 판에 적절한 대응은 사라지고 득표에 유불리만 따지고 있다. 주적이 누구인지 말을 못하는 이와 주적이 누구냐고 눈을 부라리는 이가 삿대질을 하는 판에 엉거주춤 통합과 협치만 되돌이표처럼 반복하는 자가 대권을 향해 연일 달리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제 유통기간이 끝났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성명,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조치는 하나마나다. 그래도 이 나라의 운명이 이정도로 만신창이가 될 순 없는 일이다. 대권에 나선 이의 첫 번째 목소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북핵 외교의 당당한 목소리다.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국무총리 임명이 아니다. 협치도 공동정권도 아니다. 대한민국을 배제한 채 벌어지고 있는 북핵 외교전의 칼자루부터 제대로 틀어쥐어야 한다. 김정은을 향해 공멸의 길로 가지 말 것을 확실한 메시지로 전하고 시진핑을 향해 북한을 이용해 대한민국의 주권을 흔들어보려는 시도는 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분명한 문장을 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위기감을 고취시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아베의 비열함을 지적하고 한반도를 흥정의 대상으로 몰아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취임초기 입지를 강화하려는 트럼프의 사업적 수완에 뼈 있는 협상 카드를 던질 줄 아는 당당한 정치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구한말 통렬한 경험을 했다. 우왕좌왕하다가 열강의 사냥감이 되어 이리저리 찢겨진 경험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분명하게 되짚어야 한다. 조롱과 패악, 야유와 힐난으로 날을 새우며 대통령에 당선된들 그건 그저 정치적 야심을 성취한 권력욕일 뿐이다. 권력욕에 불타는 이들이 지난 주말 또다시 온 국만을 향해 득표계산에 열중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들에게는 지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관심사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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