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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가니 내가 알아야하는 것들은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일상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고 황동규의 시 '즐거운 편지'에서처럼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황동규 시인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했지만, 하이데거는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 철학함을 할 줄 아는 이에겐 가장 고무적인 문제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소하게 보이는 지각이라고 하는 현상이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것인데, 하지만 그 지각 현상에서 우리의 감각으로 지각되는 존재자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간단히 지각이라고 이름하고 있는 그것은, 지각하면서 지각된 것으로 향함이며, 이 지각된 것이 지각되어 있음 자체에서 지각된 것으로서 이해되고 있는 방식으로 그렇게 향해있음이다. 이런 확인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지각이란 지각함이며, 지각함에는 지각된 것이 지각되어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지각함, 지각된 것, 지각된 것의 지각되어있음, 이 세 가지를 확고하게 견지하면서 지각이라는 현상을 끝까지 놓치지 말라고 사소한 것에서 철학의 장으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지각함이 지각된 것과 맺고 있는 이 분명하게 인지된 관련은 다른 우리의 행동관계의 방식들에도 속해있다. 사유된 것을 사유하는 사유함, 사랑받고 있는 것과 관련 맺는 사랑함 등등에도 그렇다. 이런 행동 관계들은 어떤 것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행동관계의 상관자로 향해있는 것이어서 이런 것을 확인함으로써 사실은 철학의 가장 고무적인 문제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확인으로써 무엇을 시작할 수 있다든가 세계의 비밀 속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는지가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이러한 사소한 확인과 그 속에서 의미된 것이 우리의 손 밖으로 빠져 나가지 않았다는 단 하나의 사실이며 그렇게 하여 아마도 우리는 그것을 훨씬 가까이 대하고 있을 수 있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은 이렇게 손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일들을 하지 않는다. 사랑받고 있는 것에만 마음이 빼앗겨 사랑함을 배제하거나 주관 속으로 매몰되고 사랑받는 것은 객체로 떠나보내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사소한 것을 손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함이란 기이한 것이다. 지각되어 있음이란 객체에서의 객관적인 어떤 것이 아닌 것이며, 지각함이라는 것이 또 '지향적'인 것으로서, 주관적인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다. 눈앞의 것의 지각되어있음이란 이 눈앞의 것 자체에 눈앞에 있는 방식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방식으로 있다는 것으로서 그러나 내면적인 영역에 속해있음이 아니라 지각하는 행동관계에 속해있다. 기이하지만 이 행동관계가 눈앞의 것을 그 자체에서 만나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의 사소한 삶의 현장에서 그렇게 존재자를 만나는 것인데 우리의 행동관계에서 사랑을 만난다고 할 때 사랑함 사랑받음을 끝까지 손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할 때만이 진정한 사랑을 만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실컷 서로를 만나놓고는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하든가 끝없이 사랑을 쫓아가면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는 호색가처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일상을 살면서 무엇을 더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각에서 무엇을 향해 지향할 때 지향함과 지향된 것은 아직까지 어둠에 싸여있어 그 어둠을 말로 표현하려니 어렵게 보일뿐이나 그냥 어둠에서 저절로 드러나는 것일 뿐 다른 것은 아니잖은가.

 그 사소하고 자명한 것들 황동규의 시에서처럼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 그리고 현존재 분석에서 말하는 인간이 세 개가 아닌 두 팔을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머리카락이 자라는 일 같은 것은 그 이유를 설명할 수도 끌어낼 수도 입증할 수도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입증할 수 없다고 독단인 것이 아니며 그것들을 지각함, 지각된 것, 지각된 것의 지각되어있음에서 삶을 이끌어내는 지평이 주어질 때 해 바람 두 팔 머리카락 같은 것들이 사실 우리의 실존의 토대인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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