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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나무집 할매
                                                                                   
양문규
 
가긴 어딜 가 그냥 살면서 똥 냄새가 부처려니 혀
 
저 은행나무 좀 봐, 바람에 설렁설렁 다 내어주잖어 모지란 중생 그냥 냅둬, 은행이 은행이라 나무는 나무고, 지 거라고 쇠자물통 들고 달라 들어도 어디 지 것이 되간디 나야 저승 갈 날 얼마 남지 않았지만 서도 자네는 저 은행나무가 이 세상 구린내 싹 없애는 날까지 여기 살어 내가 이 첩첩산중 지륵골에 시집와 70년을 살아도 이렇게 지독한 구린내는 처음이여 망할 저 절집 개 들어오고부터 천태동천이 똥 바다 되었당께
 
왜 자꾸 짐은 싸고 그려 그냥 여기 살으랑께
 

● 양문규- 충북 영동 출생. 1989년 '한국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집으로 가는 길', '식량주의자. 산문집 '너무도 큰 당신',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론집 '풍요로운 언어의 내력'. 논저 '백석 시의 창작방법 연구' 등. 현 계간 '시에', 반년간지 '시에티카' 발행인. 천태산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 대표.

▲ 황지형 시인
이즈음 산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는 초록으로 짙어진다. 익숙한 산길은 아니지만 바람에 잎사귀를 마음껏 젖히고 허공을 헤엄치는 모습은 자유롭다. 복잡하고 현란한 바람에 소리 내어 우는 것이 나무뿐이겠는가? 견고한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 자신의 감정에 대한 수긍도 쉽지 않은 뜻밖의 사건을 당하면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어른의 말씀이 신목(神木)처럼 여겨지는 것도 틀림없으리라. 아마 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화석 식물이라고 불리는 은행나무. 자신과 세계에 대한 믿음은 격년마다 많은 양의 은행이 열린다. 마음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도 자신의 발밑을 지키는 생존방식으로 살아간다. 나무줄기는 현실만 탓할 수 없는 속악하고 비루한 추위를 막아주고, 씨의 표피를 싸고 있는 과육은 지독한 냄새를 풍겨 세대가 달라져도 더 멋진 모습으로 누군가의 대를 잇는다.
 햇볕이 잘 들어 일사량이 많고, 흐르는 시내가 있어 수분 공급이 원활한 명당자리에 누구나 살고 싶다. 그 자리가 아니더라도 나무가 많은 곳은 인간의 삶을 넘어 위대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나무들은 우리처럼 위험이 닥치면 도망이나 숨을 수도 없다. 그저 씨앗이 떨어져 싹이 튼 이후부터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자신을 지키며 살고 있다.
 할매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인간을 탓하지도 않는다. 그냥 주어진 대로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최대한 단순해지며 열심히 살 뿐이다. 마치 소박한 신앙처럼.
 황지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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