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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특사자격으로 방문한 이해찬 의원의 사대외교가 문재인 대통령의 '반박근혜' 행보에 가렸다. 중국특사로 시진핑을 만난 이해찬 의원은 친서 전달 때는 고개를 숙이더니 탁상회담 때는 상석에 앉은 시진핑을 바라보며 줄곧 웃고 있었다. 이 장면은 외신의 조롱거리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였다. 시진핑에게 지나치게 허리를 굽혀 친서를 전달하는 이해찬의 굴욕 외교를 꼬집은 외신과 달리 국내에서는 이 문제가 지나칠 만큼 관대하게 넘어갔다. 대통령을 대리해서 친서를 전달하는 대통령의 특사는 외교상 대통령의 지위를 갖는다. 강골 정치인이라는 별호가 붙은 이해찬 의원이 유독 중국에서만 허리를 굽히고 하석에 앉아 시진핑을 바라보는 장면은 생소했다.

 시진핑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의 귀에다 대고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망언을 했다. 그 망언과 이해찬 특사를 맞이한 중국의 외교행태는 과거 일부였던 한국을 대하는 태도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장면이다. 굴욕외교가 문제가 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대중국 외교의 첫단추가 잘못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가진 대한민국에 대한 속국 인식은 오래고 깊다. 툭하면 튀어나오는 정치지도자의 행동이나 말이 문제가 아니라 중국인들의 내재된 중화주의가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고 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한국의 언론과 야당 정치권이다. 이해찬의 특사외교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장면이 사라졌다. 가십거리나 단신거리의 지적은 있었지만 대한민국 대통령 특사에 대한 홀대와 비굴하게 보이는 사대외교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과와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논평은 어디에도 없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문제는 중국의 태도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중국공포증이 이만큼 심각한 상황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문제에 지나칠 만큼 요란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관영언론과 정치권, 심지어 중국의 길거리에서 만나는 장삼이사까지도 한국에 대한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의 반한감정은 역사가 오래됐다. 고려인들을 향해 가오리방쯔(高麗棒子)라는 비속어를 썼고 근대에서는 만주국에서 조선인이 2등 국민 대우를 받는 것을 빗대어 얼구이쯔(二鬼子)라는 비유적표현을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대놓고 한방쯔(韓棒子)나 한개(韓狗) 따위의 저질스런 용어로 한국인을 부르고 있다. 스스로 대국이라 칭하며 일대일로라는 거창한 깃발을 들었지만 실상은 기술강국으로 급부상한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복심을 깔고 있다. 물론 이같은 비하의 저변에 한미동맹의 견제라는 외교적 키가 감춰진 것은 인정하지만 북한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신하로 굽실거리는 북한을 혈맹이라 칭하는 중국 정치권의 이중잣대는 가히 자국 우월주의에 빠진 마스터베이션 수준이다.

 지난 주말 세계 바둑 일인자라 칭하는 중국의 커제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에 처절한 3연패를 당했다. 커제는 첫 대국에 졌을 때까지만 해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채 오히려 이세돌 9단과 대국 때보다 강해진 알파고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3국까지 처참하게 무너지자 알파고와의 대국은 고통이라는 말을 남겼다. 불과 1년전으로 돌아가 보자. 이세돌과 알파고가 세기의 대결을 끝내자 커제는 "철저한 완패다. 처참했고 따분했다"며 이세돌을 향해 "인류 바둑기사의 대표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커제는 자신의 SNS에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이겼지만, 나까지 이기진 못할 것"이라고 적어 바둑팬들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딱 그 수준이다.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시진핑부터 커제, 시정잡배에 이르기까지 중국인의 기저에 자리잡은 대한민국에 대한 감정의 기초다. 알파고가 커제는 물론 중국 바둑의 대표주자인 5인방과의 맞대결에서 보여준 것은 말도 안되는 수 읽기 속도도 있지만 가장 대단한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표현해야 될 정도로 넒은 시야였다. 개인전뿐만 아니라 단체전에서 중국 프로 5명을 제압하면서 알파고는 더 이상 인간은 자신과 경쟁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로는 발전이 없다.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이후 오히려 국민적 영웅이 된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됐다.

 외교 역시 그렇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외교가 아니라 접견이다. 상대는 언제나 구걸하거나 부탁하러 오는 손님일 뿐이다. 문제는 상석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는 태도가 아니라 그런 상대를 향해 그저 머리만 조아리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 상좌에 앉아 특사를 맞이하는 중국을 향해 "특사 이해찬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대중 외교는 언제나 아래에서 윗전을 바라보는 외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이세돌의 패배이지 인간의 패배는 아니다"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던 한 문장은 그래서 당당하게 보였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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