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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다영 동천동강병원 응급실 간호사

사람의 신체기관이 다양한 만큼 병원에도 다양한 진료과목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다양한 진료과목을 모두 접할 수 있는 응급실이다.
 응급실은 말 그대로 응급한 환자가 찾는 곳이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이 많다. 환자와 가족이 다급한 마음으로 찾는 응급실. 의료진의 판단으로는 응급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까지 헤아려 언제나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는 곳이 응급실이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 속에서 매일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아마도 의료진의 사명감과 희생정신이 없다면 해내기 힘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 응급실에 배정받은 날이 떠오른다. 신규간호사이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문직 커리어 우먼을 꿈꾸고 입사한 나에게 병원의 현실은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백의의 천사인 줄 알았던 선배들은 수시로 일이 느리다, 아직도 이거 안 했느냐, 아직 안 배웠냐고 야단을 친다. 경험이 많은 선배간호사들은 사고를 달고 다니는 신규간호사와 달리 분주하지만 당황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응급한 환자일수록 차분하게 치료하는 것이 응급실 의료진의 특징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평소 알고 있던 것도 하얗게 까먹게 되고, 마음도 위축되기 쉬운 곳이어서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경험이 늘고 쌓이면서 조금씩 나아지게 된다. 나도 모르게 시간이 하루하루 흐를수록 익숙해지고, 점점 더 능숙하게 응급실 간호사가 되어간다.

 간호사로 일을 하면서 힘든 건 보호와 사랑의 대상이라 배웠던 환자들이 정작 간호사를 심부름꾼 취급하거나, 의사에게 할 말까지 우리에게 퍼부을 때이다. 이럴 때는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힘들다. 또한 호칭문제도 힘들게 한다. 환자나 보호자들이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다. "어이! 이것 좀 해줘"라고 심부름꾼 취급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굳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아가씨라고 불릴 때마다 "아가씨가 아니라 간호사에요"라고 말하고 싶은 적도 많다.
 또 술에 만취해 응급실에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 환자들은 정말 무서운 적이 있었다. 신규간호사 시절에는 이런 환자들이 많이 무섭고 미웠다. 응급환자들이 가득한 응급실에서 소리 지르고 난동부리는 환자를 이해할 수 없었고 안 그래도 힘든 업무와 환경 속에 그런 환자까지 대응하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간호사가 되겠다고 처음 결심한 순간과 간호사복을 맞추기 위해 옷 치수를 재고 신발 사이즈를 재던 시절을 떠올리며 새롭게 각오를 다진다. 이런 싸움에서 이겨내야 진정한 간호사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응급실을 사랑하는 이유는 생동감이다. 1분 1초를 다투는 환자들의 응급처치와 간호는 이러한 생동감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떤 환자는 죽기 직전에 들어와 스스로 걸어 퇴원하고, 어떤 환자는 불구가 될 수도 있는 위기상황에 찾아와 건강을 되찾아 퇴원하기도 한다. 물론 불가피하게 죽어가는 환자를 직접 보기도 한다.
 그래서 응급실 간호사는 환자에게 간호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죽고 사는 것이 경각에 달린 그 순간, 적절한 치료와 간호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환자를 위해 따뜻한 마음의 위로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에 치여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환자를 대한다면, 환자는 응급실에서 건강을 회복하더라도 좋은 기억을 남기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내 자신이 부족해 하는 일에 충실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에 치여 그저 시간 안에 일을 마치기 위해 뛰어다녔던 것이다. 그것은 나 스스로를 깎아 내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은 따로 공부하거나, 동료들이나 선배간호사, 의사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내 일부터 충실해야 환자가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어떤 환자가 오더라도 충분하고 꼭 필요한 설명을 할 수가 있고,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이 생길 것이며 나 자신에 대한 신뢰도 생길 것이다.
 간호사는 국시합격과 동시에 끝이 아니라,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하며 끝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동료, 선배간호사, 의사에게 끊임없이 묻고 배워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한다. 나 역시 간호사이기에 나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어떤 위험한 상태에서 내원할지 모르는 환자를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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