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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파정권 10년의 암묵적인 대북 밀월관계를 증거하듯 한 여간첩의 사진 한 장이 싸늘한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간첩 원정화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으로 조선족으로 가장해 결혼한 뒤 임신 7개월의 몸으로 입국, 탈북자로 위장 자수해 자연스럽게 공작활동을 전개했다. 원 씨는 우리 정부로부터 정착금과 생계비 등 모두 1억 원에 가까운 돈까지 지원받아 공작에 이용했다. 또 탈북자 신분을 역이용해 대북 무역사업을 통해 공작자금을 스스로 벌어 쓰는 것 외에도 북에 송금까지 하는 과감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중국에서는 물론 한국에 들어와서도 최대 7명의 남자와 성을 이용해 정보를 캐냈다. 원씨는 국내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현역군인들을 사귀며 정보를 빼내고 50여 차례나 군에서 북한을 옹호하는 안보 강연을 하기도 해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상대국의 기밀을 캐내거나 주요인사의 암살을 기도할 때 자주 사용하는 것이 '미인계'다. 미인계는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적국의 내부교란을 일으키는데 유용한 수단이었다. 삼국지에도 유명한 일화가 있다. 후한 말엽 한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동탁에게, 사도 왕윤은 초선을 보내 여포와 동탁을 이간질했다. 초선에 눈 먼 여포는 결국 동탁을 죽이고 오앙윤의 음모는 성공했다. 또 진나라 목공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서쪽의 이민족인 융(戎)이 강대해지자, 위협을 느낀 목공은 융 왕실에 아름다운 무희 16명과 함께 솜씨 좋은 요리사를 보냈다. 융왕은 이를 기뻐하여,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춤과 좋은 음식을 즐기며 주색에 빠졌다. 얼마 후 진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융왕은 술통 옆에 취하여 곯아 떨어져 있다가 생포되고 말았다. 

 여 간첩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마타하리다. 마타하리는 네덜란드의 레우바르덴에서 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유복한 삶은 어린시절로 끝났다. 인도네시아 자바계 혼혈의 어머니를 닮은 그녀는 파리로 무대를 옮겨 자바 섬에서 온 공주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며 마타하리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베를린에 있던 마타 하리는 독일 정보기관에 2만 마르크를 받는 조건으로 포섭돼 암호명 'H21호'로 연합군 고위장교들을 유혹, 군사기밀을 정탐해 독일군에 제공해 왔다. 당시 그가 수집한 정보는 연합군 5만명의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고급정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대 '섹시스타'의 대명사였던 그레타 가르보가 열연한 영화 마타하리에서 처럼 그녀의 삶은 한편의 영화였다. 인도네시아어로 '여명의 눈동자'인 마타하리는 자신만의 '신비주의'를 휘감은 채 유럽의 남성들을 열광시켰고 이를 미끼로 수많은 상류층 인사들과 교제했다. 실제로 세계1차 대전 발발 당시 유럽의 군인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것이 마타하리의 사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간첩행위가 드러나자 유럽 상류층의 반응은 냉담했다. 프랑스 정부는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곤혹스러웠고 빨리 사건을 끝내고 누군가가 모든 비밀을 짊어지고 사라져 주길 바랐다. 이런 사정까지 꿰뚫은 마타하리는 총살 직전 눈가리개를 거부한 채 12명의 사수 앞에서 입고 있던 외투를 훨훨 벗어 던지고 10월 아침의 싸늘함 속에서 알몸으로 선채 죽음을 맞았다.

 이번 원정화 사건 역시 좌파정권 10년의 치부가 드러난 것이지만 프랑스처럼 좌파정권에 동조했던 인사들은 치부를 가리기는 커녕 오히려 간첩사건을 여론무마용이라며 호도하고 있다. 뿌리깊은 10년 친북좌파정권의 생떼가 애처롭기까지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원씨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간첩활동을 하고 있는 또다른 간첩들이 즐비하다는 점이다. 최근 한 보도에 의하면 북한의 대표적 대남공작 조직인 통일전선부에는 한국사정조사 연구에 수십 년 종사해온 골동품 같은 전문가들이 3,600명 이상 있다고 한다. 이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 정부 고위인사들로부터 고급 정보를 캐내 이를 분석하는 등 남쪽사정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요즘 간첩들은 지난 10년간 계속된 친북좌파정권의 '뒷배' 때문에 활동 영역은 물론 대북 접선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정보기관에 의하면 노무현시대에는 아예 북한 대남공작 지휘본부가 서울에 설치돼 암약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공산정권에 나라를 빼앗긴 남베트남의 경우 북베트남 대남공작부가 현지 지휘부를 수도 사이공에 두었던 사실은 유명하다. 또 1990년대 초 독일통일 직전까지 서독정부 산하에 1만 명의 동독공작원들이 있었던 점은 공산정권의 통일전선이 지닌 일관된 전략전술을 잘 말해준다. 대북전문가들은 지금의 남한 사정은 월남이나 독일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우리사회에 지난 10년의 좌파정권이 대남공작의 고속도로를 열어줘 지금은 행정 입법 사법 언론 문화 등 각 분야는 물론 심지어 군부와 정보기관에도 공작원들이 침투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나 영국이 마타하리 사건 이후 국가정보기관의 보안유지에 공을 들였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은 사실처럼 원정화 사건 역시 좌파정권 10년의 환부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친북 좌파세력에 대한 대수술을 벌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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