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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의 몸으로 유대인 대학살과 제2차 세계대전 참상을 눈앞에서 목격한 유대인 작가 '아니타 로벨(1934, 폴란드 크라코우 출생)'의 이 그림책은, 감자를 통한 종전과 어머니의 사랑, 군인들의 귀향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피 냄새 대신 감자 굽는 냄새에 아련히 취하는 그림책이다.         
 "옛날 옛날에 동쪽 나라와 서쪽 나라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두 나라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났지요"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는 "두 아들은 칼과 훈장을 땅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도와 새로 밭을 일구고 감자를 심었지요. 부서진 물건을 고치고 집도 다시 지었습니다. 하지만 높다란 담장을 다시 세울 필요는 없었지요"라고 끝이 나고 있다. 동쪽 나라로 상징되는 빨간 군복과 서쪽 나라로 상징되는 파란 군복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세밀화가 주제를 한층 부각시킨다.       


 빨간 나라 군대와 파란 나라 군대에 아들들을 빼앗기기 전까지 어머니는 걱정이라곤 없다. 전쟁으로부터 어린 두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비록 높은 담장은 쌓았지만 자애 넘치는 어머니다. 아들들도 어머니를 더없이 사랑한다. "왜 우리 집 둘레에는 높다란 담장이 있어요?" 물어오는 아들들에게 "동쪽 나라나 서쪽 나라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감자가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란다"라고 대답하는 어머니. 그녀에겐 다른 전쟁에서 남편을 잃어야 했던 상처가 있지 않았을까? 그 일이 그녀로 하여금 담장을 쌓게 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아들들은 담장 너머의 세상에 매료되고 만다. 빨간색 군대 행렬을 목격한 순간, 감자 자루를 내던져버리고 빨간 군대에 합류하는 큰아들. 다음날로 작은아들도 파란 나라 군인이 된다. 전쟁은 아들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 만신창이가 된 두 아들이 부하들을 몰고 허기를 채우러 찾아든 곳은 고향 집이다. 감자를 놓고 동쪽 나라와 서쪽 나라는 다시 전쟁을 벌이고, 무너지고 부서진 감자 전쟁의 폐허더미 위에 죽은 듯 누워계신 어머니! 잘못했다며 울부짖는 두 아들의 목소리에 힘을 얻어 깨어난 어머니가 병사들 속에 우뚝 서서 외치고 있다. "여러분, 여러분은 내 집을 부수고 내 밭을 짓밟았어요. 하지만 아직 창고에는 여러분 모두가 배불리 먹을 만큼 많은 감자가 있지요. 그 감자를 나누어 주기 전에 먼저 여러분들은 약속을 하나 해야 합니다.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이 쓰레기들을 모두 치운 후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이예요"

▲ 남은우 아동문학가
 탄탄한 스토리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만세! 만세! 감자 만세! 어머니 만세!" 만세를 외치는 병사들 속에 나도 서 있다. 6.25전쟁 67주년을 맞은 오늘, 뒷산 토굴에 은신 중인 아들에게 감자밥을 나르는 삼베 치마 어머니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저녁밥으로 감자를 삶는다. 벽난로 속 숯불 속에 익고 있는 감자는 아니지만 저만치 가스레인지 위에서 아련히 피어오는 감자 익는 냄새…. 어머니의 감자밭에서 봄을 나고 하지 며칠 전 수확해서 온 감자다. 천둥이 친다. 반가운 소나기와 동무하여 숟가락으로 폭폭 파먹는 감자 맛은 일품일 게다. 남은우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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