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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부터 새로운 연구테마에 돌입했다. 몇 년 전부터 구상하고 있어서 언제 시작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올 초에 마음을 굳게 먹고 시작하기로 했다. 바로 일본의 <원폭문학> 연구다. 몇 년 전에 누가 일본문학사상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에 서슴지 않고 1945년 8월 15일 패전이라고 했었다. 그러자 그 사건 이후의 일본문학의 특징에 대해서 글을 써 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쓴 주제가 일본의 원폭문학이었다. 그래서 그해 여름방학에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했었다. 일본 유학시절 그토록 오랜 시간을 일본에서 보내면서 왜 한 번도 히로시마를 방문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히로시마에서 본 평화기념공원 및 원폭기념관은 나의 상상력을 초월한 원폭피해의 참혹성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평화기념공원 한 쪽에는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도 있었다. 당시 희생자는 주로 강제로 끌려온 노동자들로 약 2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원폭피해 자체만 보더라도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아마 이때부터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원폭문학에 대해서 연구해야지 마음먹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올 여름방학 때 서둘러 일본의 두 번째 원폭피해지역인 나가사키를 방문한 것이었다.

 오늘 만나 볼 작품은 일본 원폭문학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 하라 타미키(原民喜·1905~1951)의 작품 『여름 꽃(夏の花)』(1947)이다. 이 소설은 단편소설로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되어 있다. 1996년 고려원에서 『일본대표단편선1,2,3』을 출판했는데 그중 『일본대표단편선1』에 수록되어 있다.

 작가 하라 타미키는 히로시마 출생으로 『여름 꽃』은 작가의 체험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 하라 타미키는 원폭피해 입기 1년 전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그 아내의 기억과 슬픔을 시집으로 남기기 위해 1년만 더 살겠다고 하면서 늘 죽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1945년 8월 6일 하라 타미키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그는 다시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원폭피해를 알리는 소설로 그 의미를 다했던 것이다. 그리고 1951년 3월 13일 한국전쟁 당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에도 원폭투하를 심각하게 고려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후 기차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여름 꽃』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죽은 지 1년이 된 아내의 무덤을 찾은 주인공은 그 아내의 무덤 앞에서 피운 향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에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었다고 했다. 그는 화장실에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했고 유일하게 그가 사는 집만이 무너지지 않고 건재했다. 40년 전 아버지가 고집스럽게 단단하게 지은 집인 것이다. 그때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과장되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집이 건재해도 여기서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밖에는 온통 무너져 내린 집들뿐이고 맞은 편 철근 콘크리트 건물만이 보이고 아무것도 목표가 될 만한 것이 없었다.

 무너진 가옥 위를 타고 넘어가면서, 도로를 발견해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도와 주세요'하는 절규와 '집이 불 탄다'하고 울부짖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버스를 기다리던 행렬은 선 채로 죽어있었다. 자신이 살아남아 있다는 자각과 함께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이 날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써서 남겨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여름 꽃』은 이렇듯 그날의 기억을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 이러한 작품의 의미는 그날의 참상을 사진을 찍은 것처럼 그대로 묘사하여 알려주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히로시마 출생의 많지 않은 작가들이 히로시마 참상을 수기에 가까운 소설로 발표하였다. 물론 작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도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글로 기록하여 남기고 있다.

 원폭문학이라고 하는 장르는 일본에서만 탄생한 장르로 원자폭탄 투하라고 하는 체험을 한 일본만이 지니고 있다. 그동안 일본인의 시각에서만 봐왔던 원폭문학을 한국인이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싶은 게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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