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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가 말이 아니다. 환율이 급상승과 급락을 거듭하고 주식시장이 요동을 친다. 미국발 금융대란은 이제 국가적 문제에서 서민가계에까지 파급 효과가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다. 부자가 부자를 만드는 사회는 자본주의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지난 1997년 IMF 사태 이후 우리사회는 뚜렷한 양극화의 길로 가고 있다. 양극화 사회의 핵심은 성장과 분배의 문제이다. 물론 정보나 기술, 교육의 양극화 문제도 자주 제기되지만 소득의 불균형과 조세의 형평성에서 빚어지는 복지재원의 편향성은 양극화 사회가 안고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최근 통계에 울산의 개인 소득이 전국 평균보다 2배 가까이 많다는 뉴스가 있다. 이에 반해 울산시와 산하 구군에서 고액의 세금체납자가 늘어나 공무원들이 고액 체납자들의 체납세액 징수에 묘안을 짜내는 등 고육책을 동원한다는 뉴스도 있다. 어디 이뿐인가? 봉급 생활자는 하루도 틀리지 않게 각종 세금을 철저하게 징수해 가면서 개인사업자나 고소득 자영업자의 세금은 여전히 제대로 걷히지 않는다는 뉴스도 있다. 얼핏 보면 울산의 개인소득이 타도시보다 높아 모두가 잘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통계일 뿐 빈부 격차는 엄연히 존재하고 고소득자들의 경제적 도덕불감증도 여전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성장과 분배문제나 경제정의의 실천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우선은 정의의 문제가 대두된다. 정의의 잣대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 시대마다 학자마다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변함없는 기준은 사회 일반의 보편적 가치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야할 점이 성장위주의 경제와 분배위주의 경제가 가진 장단점과 함께  경제정의의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바로 그 해법이 조세정의의 확립에 있다.


 정치란 것이 정치가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조세정의를 확립하지 못하면 그 불똥이 계층간의 돌이킬 수 없는 갈등요인이 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에게 가하는 '가혹한 정치'라고도 할 수 있다. 조선말 3정의 문란을 이야기하면서 첫 번째로 거론하는 것이 세정의 문란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성장과 분배는 경제학의 근본 문제이다. 그래서 수많은 경제학자나 정치가들은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대체로 성장을 우선에 두거나, 분배를 우선에 두는 등의 경제 정책을 취해왔다. 분배를 우선시하는 마르크스는 경제 문제에 대한 자신의 관심의 초점을 분배에 두었다. 마르크스의 경제학 이념을 계승한 공산 진영에서는 소련을 필두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소득의 균등한 분배에 힘썼다. 이들은 소득의 인적 분배를 기초로 '모두 골고루 잘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가졌다. 그러나 현재 분배 우선 정책은 달리기 경주에서 못 뛰는 사람을 잘 뛰게 하기보다는, 잘 뛰는 사람을 못 뛰게 하여 격차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 증거로 사회주의를 가장 거대하게 표방한 소련 체제가 붕괴되었으며, 그 이후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변모하는 국가들이 속속 나타났다.


 성장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는 일반적으로 성장과 분배는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상충 관계에 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필요하므로, 더 큰 경제 성장이 가능한 방향으로 소득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많은 경제학자들의 견해이다. 이들은 소득의 기능적 분배를 기초로 하여 노동자가 생산한 만큼, 또는 사회에 공헌한 만큼 소득을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두 가지 문제의 접점은 조화를 이루는 방법의 문제에 있다. 이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성장에 따른 소득을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인정할 수 있는 조세의 원칙을 통해 복지로 분배하는 정치이다. 원칙을 세우고 이를 엄격하게 집행하면 더 이상 세금으로 장난치거나 재산 빼돌리기로 '탈세'나 '도세'를 일삼는 도덕불감증은 줄어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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